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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장성문화권의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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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차 메뉴 정의

23. 동기 김지광 (東磯 金知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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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김지광(1663∼1725) 선생은 원관헌 김극광과 함께 큰 학문을 닦아 한 시대의 한 지역을 대표하는 유학자가 되었다. 문집은 3권 2책으로 간행되었는데, 초간은 1879년, 재간은 1963년 선생의 10세손 봉기에 의해 이루어졌다. 1권은 시 14편, 2권은 제문 20편, 축문 5편, 3권은 퇴율양선생이기설후변(退栗兩先生理氣後辨)을 비롯해서 태극도해, 수화금목설 등 13편이 실렸다. 초간본의 서문은 노사 기정진이 그리고 재간본 발문은 선생의 10세손인 봉기에 의해 씌여졌다.

24. 연채당 반응확 (聯  堂 潘應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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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채당 반응확(1666∼1739) 선생은 본관이 남평으로 통덕랑인 세주의 아들로 서삼면 외현에서 태어났다. 3세부터 문장을 이해하였고 12세에 성숙한 경제에 들어갔으며 우애가 지극하여 장공예구세동거도(張公藝九世同居圖)를 그려 벽에 걸었는가 하면 외연 서쪽에 연체당을 지어 형제간 우애를 다졌고, 박인실 등과는 도의적 친구였다. 문집은 1939년에 1권 1책으로 간행되었다. 1권은 자서를 시작으로 시 66편, 2권은 시 90편과 부록으로 연채당기 등 4편, 시 7편 등을 수록하였다.

25. 묵포 변치명 (墨逋 邊致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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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포 변치명(1693∼1775) 선생은 본관이 황주로 망암의 5대손이며 증 의정부 좌참찬 일(佾)의 아들이니 장성읍 장안리에서 출생하였다. 가정에서 학문을 닦은 선생은 29세에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그 뒤 문과에 응시하여 합격자를 발표하던 날에 영조가 불러 "너는 무엇으로 나를 섬기겠느냐"하고 묻자, 선생은 "충(忠)과 공(公) 뿐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선생은 지평 때 사직소를 올리면서 학풍을 일으켜 행정에 근면할 것과 무신년(1278) 역도를 처벌할 방안을 언급하였고, 장령 때에는 언로개혁과 인재등용에 관한 상소를 올렸다. 벼슬은 공조판서에 올랐고 효헌공(孝憲公) 시호를 받았다. 문집은 1986년에 3권 1책으로 전라남도에 의해 간행되었다.

26. 죽천재 변치도 (竹泉齋 邊致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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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천재 변치도(1693∼1775) 선생은 본관이 황주로 통덕랑 숙( )의 아들이다. 시문에 능숙하여 생원·진사 양과에 합격하였으며 성리학에 정통하고 행동이 독실하니 장성부사 이우(李 )는 "우리 고을에 안자(顔子)"라고 칭찬하였다. 윤명재의 억울함을 변명하는 상소문 첫머리에 그 이름을 썼으며, 후진을 양성하면서 만년을 보냈다. 유고집 4권 가운데 2권은 유실되었으며 현존하는 2권 가운데 1권은 시 471편, 2권은 시 248편, 문 27편을 수록하였으며, 부록으로 죽천재기 등 22편을 수록했다. 이 유고집 역시 범호정유고와 함께 전라남도가 펴냈는데 발문은 모두 변시연이 썼다.

27. 단옹 변득양 (檀翁 邊得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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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옹 변득양(1723∼1801) 선생은 본관이 황주로 묵포 변치명의 아들로 장성읍 장안에서 태어났다. 선생 역시 가정에서 학문을 닦아 31세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그 이듬해에 제술(製述)로 장원하였으며, 34세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벼슬은 사헌부 지평에서 출발하여 공조판서에 이르렀다. 임오(1738)년에는 시강원 문학으로 사도세자를 구명하기 위하여 극간하다가 관직을 삭탈당했다가 다음 해에 복직되었다. 정조대왕 때는 흉당을 죽여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는데 그 상소가 왕조실록에 전편이 실렸다. 고종은 선생의 시호를 효정(孝靖)으로 내렸다. 선생의 문집은 2권 1책인데 1986년 전라남도가 [향토문화연구자료]로 간행하였다.

28. 고암 변득형 (고巖 邊得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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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암 변득형(1711∼미상) 선생은 본관이 황주로 자인현감 유(攸)의 손자로 북이면 화동에서 태어났다. 학문은 높았으나 과거에는 실패하였고 회갑에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문집은 경인동란에 소실되었고 시 23편과 부록으로 시 8편, 묘표 1편이 향토문화연구자료로 전하고 있다.

29. 돈암 변염 (遯菴 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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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암 변염(1723∼1797) 선생은 본관이 황주로 봉암광 광효의 아들로 장성읍 장안에서 태어났다. 봉암공에게 배운 선생은 큰 재주로 이십전후에 경사(經史)를 관통하였는가하면 천문·지리·의학·복서·산수에 이르기까지 두로 통달하였기에 한남당(韓南塘)은 그 공부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암행어사·도백 등의 천거가 있었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제자양성에 여을 쏟았다. 문집은 3권 2책으로 묶어 2001년에 간행되었는데, 1권은 시 6편, 성재명(誠齋銘)·함양잠(涵養箴) 각 1편과 천문에 관한 글 10편, 지지에 관한 글 14편 등이 수록되었으며, 2권은 잡저로 인사(人事)에 관한 글 13편이 수록되었고, 3권은 부록편으로 묶었다.

30. 근신당 변상찬 (謹信堂 邊相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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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신당 변상찬(1740∼1815) 선생은 본관이 황주로 고암의 아들로 화동에서 태어나 성균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정조 때 어정책자(御定冊子) 교정유생이 되었으며 어제구경의의(御製九經疑義)에 대해 하나하나 대답하였다. 주역에서 7조목, 시경과 서경에서 각 6조목, 춘추에서 8조목, 예기에서 7조목, 논어와 맹자에서 각 8조목, 중용과 대학에서 각 6조목, 종합 62조목이다. 이에 관계된 유생이 25인이었지만 정조는 근신당의 답변서에 극찬을 하였다. 정조가 죽자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고 만년에는 강당을 짓고 후진교육으로 여생을 보냈다. 문집은 시 5편, 문 6편, 경의조대(經義條對), 부록 등으로 묶었다. 이 문집 역시 전라남도가 자료로 1986년에 간행하였다.

31. 맥호 김수조 (麥湖 金壽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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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호 김수조(1742∼1810) 선생은 본관이 울산이며 일현의 아들로 황룡면 맥동에서 태어나 문경공 김미호(金渼湖)의 제자가 되었다. 조조 때 도백의 천거로 벼슬길에 들어가 사헌부 장령에 이르렀으며 영춘현가으로 선정을 펴기도 했다. 문집은 분실되고 겨우 보존된 것으로 만사 1편, 연체당기 1편, 묘지 5편, 묘갈명 8편 등이 수록되었으며, 허계(許繼)·박봉주(朴鳳周) 등 3편의 행장을 기록되었으며, 부록으로 글 3편이 수록되었다. 서문은 변시연이 발문은 선생의 6세손인 일수가 썼다.

32. 희구당 반희악 (喜懼堂 潘希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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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구당 반희악(1743∼1837) 선생은 본관이 남평이고 담락재 유장의 아들로 서삼면 외연에서 태어났다. 가정에서 깊어진 선생의 학문은 온 세상을 놀라게 했지만 안빈낙도의 정신으로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많은 후진을 양성하였다. 벼슬은 수직(壽職)으로 통정대부가 내려졌다. 문집은 1939년에 2권 1책으로 간행되었는데, 1권은 시 122편, 2권은 10편의 서와 1편의 편지, 선생의 가장, 행장, 묘갈문, 그리고 시 13편이 수록되었다. 한편 속편에는 장문 10편과 보유 등을 수록했다. 서문은 양성 이병수(陽城 李炳壽)가 썼으며, 선생의 자서(自序), 선생의 5세손 지환의 발문이 있다.

33. 고암 김이휴 (顧菴 金履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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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암 김이휴(1745∼1821) 선생은 본관이 울산인데 하서선생의 후손인 승조(承祖)의 아들로 북이면 중평에서 태어났다. 선생의 문집은 7세손인 진웅에 의해 1982년 국역본으로 간행되었다. 1권은 시 68편, 2권은 명(銘) 2편과 제문 4편, 3권은 부록으로 선생의 행록, 묘갈명, 유림장계(儒林狀啓) 등 14편이 수록되었고, 4권 역시 부록으로 송간공행록(松磵公行錄)과 발문 등을 수록하였다. 한학자 이근섭은 서문에서 선생을 "시는 창울(蒼鬱)하고 기건(奇健)하여 수연(粹然)히 도의(道義)를 담아 문장을 이루었으며, 문은 순숙(純熟)하고 평아(平雅)하여 맛보기 어려운 것 같아도 깊이 연구하고 오래 씹으면 오묘한 뜻을 발휘하지 아니함이 있어 이른바 도(道)에 근본을 두었고 이치에 합당하다"고 평가하였다.

34. 만각재 변상면 (晩覺齋 邊相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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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각재 변상면(1779∼1853) 선생은 본관이 황주로 종천(宗天)의 아들이다. 가학으로 학문을 성취하였으며 벼슬에 뜻을 두었으나 이루지 못하고 후진양성에 노력하였기에 장성·곡성·순천·동복 등지에 유명한 제자를 배출하였으며, 문생계가 조직되었다. 문집은 만각재기(晩覺齋記)를 비롯하여 시 12편, 입계시발문(立契詩跋文), 문생계안(門生契案) 등을 수록하고 있는데 송계유고와 함께 전라남도가 [향토문화연구자료] 제9집으로 묶어 펴냈다.

35. 기옹 변종락 (碁翁 邊宗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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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옹 변종락(1792∼1863) 선생은 본관이 황주로 증좌승지인 치현(致賢)의 아들로 장성읍 장안에서 태어났다. 조부 돈암공에게 글을 배운 선생은 일찌기 과거에 응시하였지만 실패하고 시서와 바둑으로 여생을 보냈다. 문집은 1975년에 2권 1책으로 간행되었는데 1권은 시 72편, 서문 2편, 경의문대(經義問對) 13편 등을 수록하였고, 2권은 부록으로 차운(次韻) 93편, 만사 15편, 기옹정기 4편, 가장 등 12편이 수록되었다. 한편 이 문집에는 성암 변상홍(省菴 邊相鴻 : 1812∼1860)의 일고(逸稿)가 추가되었는데, 그 내용은 선생의 시 26편, 의(疑) 6편, 행장 5편 등이다.

36. 노사 기정진 (蘆沙 奇正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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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기정진(1798∼1879) 선생은 본관이 행주로 재우의 아들로 순창 복흥면 구수동에서 태어나 18세에 장성군 황룡면 하남으로 이거하였다. 특별한 스승이 없이 큰 학문을 이룬 선생은 퇴계·율곡과 더불어 조선의 6대 성리학자가 되었으며 벼슬은 호조참판에 올랐다. 김석구·정재규·기우만 등 수많은 석학을 배출하였고, 고산서원 외에 6·7개 사당에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모신다. 선생의 문집으로 원집(原集) 28권, 답문류편(答問類編) 15권, 부록 3권, 연원록 등을 모아 1책으로 간행했다. 먼저 원집을 살펴보자. 1권은 시 193편, 2권은 시 191편, 3권은 상소문 3편, 사장(辭狀) 3편, 책(策) 1편 등이 수록되었고, 4권은 편지 46편, 5권은 편지 41편, 6권은 편지 44편, 7권은 편지 71편, 8권은 편지 57편, 9권은 편지 66편, 10권은 편지 81편, 11권은 편지 60편, 12권은 편지 27편, 13권은 편지 57편, 14권은 편지 56편, 15권은 편지 30편 등이 수록되었고, 16권은 잡저로 이통설(理通說)을 비롯하여 33편, 17권은 서문 33편, 18편은 서문 39편, 19권은 서문 42편, 20권은 서문 45편 등이 수록되었고, 21권은 기문 29편, 22권은 기문 37편, 23권은 기문 22편 등이 수록되었으며, 24권은 발문 86편, 25권은 잠(箴) 1편, 명(銘) 1편 사(辭) 5편, 상량문 4편, 격문(檄文) 1편, 축문 6편, 제문 7편 등이 수록되었고, 26권은 비문 4편, 묘갈명 10편, 묘지명 6편 등이 수록되었으며, 27권은 묘표 34편, 28권은 행장문 11편, 전(傳) 2편, 유사(遺事) 1편 등이 수록되었다. 답문류편 1권은 론도체 제1(論道體 第一)로 총론 5십조와 이통설, 외필(猥筆), 답인문(答人問) 등이 수록되었으며, 2권은 성명(性命) 31조와 납양사의(納凉私議) 등이 수록되었으며, 3권은 심성정(心性情) 25조와 우기(偶記), 형기신리(形氣神理) 7조, 형질기질설(形質氣質說), 귀신명수(鬼神命數) 11조 등이 수록되었으며, 4권은 논학 제2(論學第二)로 총론 49조, 지수(持守) 36조 등을 수록하였으며, 5권은 지행 독서 정부(知行讀書正附) 30조, 부 서실잠(附書室箴) 출처 어묵 사수부(出處語默辭受附) 등이 수록되었으며, 6권은 논경 제3(論經第三)으로 소학 39조, 대학 125조 등이 수록되었으며, 7권은 논어 140조, 8권은 맹자 75조, 중용 77조, 9권은 시경 18조, 서경 21조, 주역 18조, 춘추 3조, 예기 27조 등이 수록되었으며, 10권은 논 주정장주지서 제4부 제유편(論周程張朱之書第四附諸儒編)으로 주자 28조, 정자 21조, 장자 5조, 주자 29조, 제유 15조 등이 수록되었고, 11권은 통례(通禮) 43조, 관례 6조, 혼례 11조 등이 수록되었으며, 12권은 상례(喪禮) 159조와 복제설(服制說) 등이 수록되었고, 13권은 상례 96조와 신천록(新阡錄) 2조가 수록되었으며, 14권은 제례 46조와 방례 교원 의절부(邦禮校院儀節附) 12조 등이 수록되었고, 15권은 논사 제5(論史第五)편으로 26조와 훈문인(訓門人) 지구부(知舊附) 제757조 등이 수록되었으며 부록으로 사제문(賜祭文)을 첫머리에 수록했으며, 2권은 선생의 행장과 신도비명 등을 추가했다. 부록은 선생의 연보와 추록(追錄), 묘갈명, 그리고 연원록(淵源錄) 등을 수록하였다. 선생의 문집은 1882년에 활자본으로 간행되었고, 1902년에는 경남 신안정사에서 목판본으로 중간되었으며, 1976년에는 아성문화사에서 축소영인본을 간행했으며, 1982년에는 아세아문화사에서 5책으로 영인간행했다.

37. 봉서 변상철 (鳳捿 邊相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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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서 변상철(1818∼1886) 선생은 본관이 황주로 기옹선생의 아들로 장성읍 장안에서 태어나 노사선생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학문을 닦은 후 누차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실패하자 드디어 성리학에 정진하였다. 문집은 1974년에 2권 1책으로 간행되었다. 1권은 시 256편, 2권은 서(書) 1편, 잡저 12편, 사서의의(四書疑義) 21편, 서(序) 3편, 명(銘) 2편, 축문 1편 등이 수록되었고, 부록에는 만사 2편과 일기발 등 8편이 수록되었으며, 그 가운데 일기는 사료로 지정되었다.

38. 신호 김록휴 (莘湖 金祿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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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 김록휴(金祿休 : 1827∼1899) 선생은 하서의 후손으로 본관이 울산이며 진사인 방묵(邦默)의 아들로 황룡면 월평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노사선생의 제자로 심성이기(心性理氣)의 학문에 연구가 깊었으며 월고 조성가와 함께 고산서원에 배향되었다. 문집은 1981년 선생의 증손인 정중에 의해 3권 1책으로 간행되었다. 1권은 5언절구 8편, 5언4율 11편, 5언고시 2편, 6언시 3편, 7언절구 37편, 6詞 1편, 7언4율 121편, 7언고시 1편 등이 수록되었고, 2권은 편지 58편, 서문 1편, 기 6편, 발문 4편, 상량문 1편, 제문 4편, 묘지명 1편, 행장 3편 등이 수록되었다. 3권은 부록인데 제문 5편, 만사 11편, 가장, 행장, 묘갈명 등이 수록되었다.

39. 백석헌 기양연 (柏石軒 奇陽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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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헌 기양연(1827∼1895) 선생은 본관이 행주로 통정대부 윤진(允鎭)의 아들로 황룡면 하남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경사(經史)에 능통하여 노사선생의 사랑이 깊었다. 문과에 합격한 선생은 벼슬이 부교리·부수찬에 이르렀다. 문집은 1975년 2권 1책으로 간행되었다. 1권은 시문 21편, 편지 53편, 잡저 6편 등이 실렸고, 2권은 서문 5편, 기문 3편, 발문 1편, 제문 5편, 묘갈명 1편, 행장 4편 등이 수록되었으며, 부록은 승정원일기초록을 비롯하여 선생의 행장, 묘갈명, 묘표, 만장 등과 제문 10편, 백석헌기, 농소기 등이 수록되었다.

40. 신묵재 변태용 (愼默齋 邊台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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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묵재 변태용(1836∼1897) 선생은 본관이 황주이며 상철의 아들로 장성읍 장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봉서공과 서석 김한택에게 학문을 사사받아 향시에는 누차 합격하였으나 문과에는 실패하였다. 이학(理學)에 밝았다. 선생의 문집은 1982년에 3권 1책으로 간행되었다. 1권은 시 151편, 2권은 잡저 4편, 경의문대(經義問對) 13편, 상량문 2편, 묘갈명 1편 등이 실렸고, 3권은 부록으로 회갑운 35편, 만사 17편, 제문 7편 등이 수록되었다.

41. 송사 기우만 (松沙 奇宇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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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사 기우만(1846∼1916) 선생은 본관이 행주이며 노사선생의 손자로 황룡면 하남에서 태어나 할아버지에게서 학문을 사사받았다. 선생은 한말의 국난에 당하여 호남의병을 규합, 총영수가 되었다. 의병을 파병한 후 토굴속에서 의병열전을 저술하였고 고산서원에 배향되었다. 선생의 문집으로 58권 32책으로 1924년에 간행되었다. 1권은 시 292편, 2권은 상소문 8편, 3∼10권에는 모두 1029편의 편지가 묶였으며, 11∼12권에는 잡저 177편, 13∼16권에는 서문 285편, 17∼22권에는 기문(記文) 455편, 23권에는 명(銘) 4편, 잠(箴) 1편, 찬(贊) 1편, 사(辭) 33편, 상량문 12편, 축문 9편, 제문 44편 등이 실렸고, 24권은 시도비명 16편, 25권은 비 51편 등이 수록되었다. 26∼38권에는 묘갈명 585편, 39∼40권에는 묘지명 67편, 41∼43권에는 묘표가 162편, 44∼48권에는 104편 등이 실렸으며, 49권은 유사(遺事) 34편, 50권은 전(傳) 36편 등이 수록되었다. 속집은 2권 1책으로 간행되었는데 1권은 시문 17편, 편지 10편, 잡저 12편, 서문 4편, 기문 27편, 발문 7편, 사(辭) 1편 등이 수록되었고, 2권은 신도비명 3편, 비문 4편, 묘갈명 17편, 묘지명 3편, 묘표 7편, 행장 2편, 유사 2편 등이 실렸다. 이후 습유(拾遺)로 3권 1책이 간행되었다. 1권은 시문 3편, 편지 21편, 잡저 1편, 기문 2편, 축문 1편, 신도비명 2편, 행자 1편, 전(傳) 1편 등이 실렸으며, 2권은 연보, 3권은 행장 9편 등이 수록되었다. 그리고 사상만제록(沙上挽祭錄)도 3권 1책으로 간행되었다. 1권은 215명의 만사를, 2권은 95명의 제문을, 3권은 110명의 제문을 수록하였다.

42. 금초 김진호 (錦樵 金鎭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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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초 김진호(1847∼1916) 선생은 본관이 울산이며 의정(義楨)의 아들로 서삼면 숲실에서 태어났다. 정언 고시경에게 학문을 닦은 선생은 1876년에 명경과(明經科)에 올라 승문원 부정자를 비롯 부수찬에 이르렀다. 문집은 1975년에 2권 1책으로 간행되었다. 1권은 시 18편, 교서 2편, 상소문 3편, 표 1편 편지 8편, 서문 5편, 기문 9편, 발문 2편, 상량문 4편, 신도비명 1편, 묘지명 1편, 묘표 1편, 행장 2편, 전 1편 등이 실렸고, 2권은 부록으로 금초차운 23편, 회갑차운 4편, 만사 2편, 제문 7편, 행장, 묘갈명, 묘지명, 주관이력(做官履歷) 등이 수록되었다.

43. 식재 기재 (植齋 奇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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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재 기재(1854∼1921) 선생은 본관이 행주로 아버지 진연과 어머니 광산김씨 사이에 황룡면 아곡리에서 태어났다. 노사 기정진 선생의 제자로 경학과 사서에 깊은 연구를 하였으며, 특히 중용에 조예가 깊었다. 선생은 단발령과 국모시해 사건으로 촉발된 제1차 의병항쟁에 기우만을 도와 거병하였으나 임금의 권유로 해산해 버렸다. 선생의 행장은 동문인 오준선이 지었고, 선생이 남긴 글들은 둘째아들 렴(廉)이 모아 1929년에 6권으로 간행하였다.

44. 일암 이규철 (一菴 李圭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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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암 이규철(1854∼1925) 선생은 본관이 경주로 아버지 항영, 어머니 진주정씨 사이에 차남으로 삼서면 가산리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학문에 열중하였으며, 특히 부모에 효도하고 일가친척과 우애하였다. 선생은 간재 전우(田愚)를 찾았는데 그는 선생을 노우(老友)라 불렀으며 일암이란 호를 지어주었고, 이웃마을에 사는 백진사 및 오후석과 자주 교류했으며 후진양성에 전념하였기에 제자들이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계를 조직하여 토지를 마련하고 그 소득으로 제사를 모시고 있다. 선생의 문집은 시·부·서·잡저 등을 모아 현곡 유영선의 서문을 받아 1936년에 간행되었다.

45. 보산 기우승 (普山 奇宇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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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산 기우승(1858∼1907) 선생은 본관이 행주로 황룡면 하남에서 태어났으며 노사선생의 제자이다. 선생은 국가적 혼란기를 당하여 은둔생활로 선비정신을 일관하면서 많은 제자를 길렀으니 박봉구·기노백 등이 대표적이다. 문집은 1956년 2권 1책으로 간행되었다. 1권은 시 19편, 잡저 8편 등이 수록되었으며, 2권은 논(論) 4편, 서문 6편, 기(記) 1편, 발문 1편, 제문 5편 등이 실렸다. 서문은 동곡 김준식(金俊植)이 썼으며, 박봉구·기노백이 간행했다.

46. 봉남 변만기 (鳳南 邊萬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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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남 변만기(1858∼1924) 선생은 본관이 황주이며 신묵재 태용(台容)의 아들로 장성읍 장안에서 태어났다. 조부 봉서공에게 글을 배워 마침내 면암 최익현의 제자가 되어 문과에 응시하였으나 실패하였다. 문집은 1994년에 4권 1책으로 간행되었다. 1권은 시 155편, 2권은 서 38편, 3권은 잡저로 도체(道體) 등 21편이 수록되었으며, 4권은 경의문대 52편, 습유 2편, 그리고 부록으로 가장(家狀) 등 3편이 실렸다. 서문은 김문옥이 발문은 선생의 삼종손인 변시연이 썼다.

47. 정암 변진욱 (正巖 邊鎭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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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 변진욱(1858∼1924) 선생은 본관이 황주이며 봉남공의 아들로 장성읍 장안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가정에서 닦은 학문으로 숭조정신이 추철한 유학자였다. 문집은 1994년에 4권 1책으로 간행되었다. 1권은 시 116편, 서 10편, 잡저 18편 등이 수록되었고, 2권은 서문 2편, 기 9편, 발문 7편, 행가(行歌) 5편, 고축(告祝) 1편, 상량문 1편, 제문 6편, 비 2편, 묘표 1편, 행장 7편 등이 실렸으며, 3권은 속오산명인록(續鰲山名人錄)과 장성향적(長城鄕籍) 등이 수록되었고, 4권은 부록으로 시 8편, 만사 4편, 서 14편 등이 수록되었다.

48. 율재 공상원 (栗齋 孔商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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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재 공상원(1861∼1900) 선생은 본관이 곡부이다. 선생은 사서삼경을 두루 섭렵하였으며, 특히 한시를 많이 남겼다. 말년에는 경포제를 건립하여 후진양성에 노력하였다. 문집은 선생의 손자인 재남과 종증손인 경호에 의해 2권 1책으로 간행되었다.

49. 화동 김한익 (華東 金漢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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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동 김한익(1863∼1944) 선생은 본관이 영광으로 정현(正鉉)의 아들로 황룡면 수산에서 출생하였다. 면암 최익현의 제자로 조선왕조 말기에 항일정신이 깊은 유학자이다. 문집은 1974년에 2권 1책으로 간행되었다. 1권은 시 128편, 편지 14편, 잡저 5편, 논설 5편 등이 실렸고, 2권은 서문 10편, 기문 8편, 제문 3편, 비명 1편, 비음기(碑陰記) 3편, 묘갈명 1편, 행장 2편, 가장 2편, 그리고 부록으로 4편 등이 수록되었다. 서문은 선생의 조카인 김준식이 썼고, 발문은 윤정복이 썼다.

50. 탁신재 김한목 (濯新齋 金漢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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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신재 김한목(1865∼1934) 선생은 본관이 영광으로 황룡면 수산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노사 기정진, 면암 최익현 등과 교류하며 유학에 정진하였다. 문집은 1968년에 5권 1책으로 간행되었다. 1권은 시 82편, 2권은 편지 31편, 3권은 잡저 12편, 서문 14편, 기문 24편 등이 수록되었으며, 4권은 발문 5편, 찬(贊) 1편, 제문 6편, 묘갈명 4편, 묘지명 1편, 행장 4편, 전 2편 등이 실렸고, 5권은 부록으로 면암 최익현의 편지 1편과 선생의 묘갈명 등이 수록되었다. 서문은 김윤동이 썼고, 발문은 선생의 아들인 준식이 썼다.

51. 서평 김기상 (西坪 金基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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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김기상(1867∼1938) 선생은 본관이 울산이며 금초 김진호의 아들로 서삼면 숲실에서 태어났다. 신묵재 변태용의 제자로 학문이 깊었는데 마침내 판서 송응수(宋應洙)를 사사하였다. 그는 모현(慕賢)정신이 강하여 경현사를 세웠는가 하면 임종배·문봉호 등 많은 제자를 양성하였다. 문집은 제자들에 의해 1975년에 5권 2책으로 간행되었다. 1권은 시 208편, 편지 13편, 설(說) 8편 등이 수록되었으며, 2권은 서(序) 10편, 기(記) 42편, 발 6편 등이 실렸으며, 3권은 상량문 10편, 경현사찬(景賢祠贊) 1편과 제문 8편, 축문 6편, 통문 3편, 비문 6편, 묘갈명 3편, 묘지명 1편, 묘표 7편 등이 실렸으며, 4권은 행장 12편, 전 2편, 그리고 부록으로 선생의 행장을 비롯하여 묘갈명, 만사, 제문, 문인록 등이 엮였다. 서문은 나갑주·김희진이 썼고, 발문은 문봉호가 썼다.

52. 도봉 공학원 (道峯 孔學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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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 공학원(1869∼1939) 선생은 본관이 곡부로 석철(錫哲)의 아들로 북이면 만무리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송사 기우만의 수제자로 학문이 깊었으며 특히 의리가 분명한 유학자이다. 문집은 선생의 아들 우열에 의해 1975년 11권 5책으로 간행되었다. 1권은 시 386편, 2권은 편지 89편, 3권은 편지 108편, 4권은 편지 70편, 5권은 서문 26편, 기문 84편 등이 실렸으며, 6권은 발문 19편, 상량문 16편, 제문 18편, 7권은 축문 11편, 행장 17편, 묘표 9편, 묘갈명 7편, 전(傳) 3편 등이 수록되었고, 8권은 잠(箴) 2편, 논문 3편, 설(說) 22편, 사(辭) 49편, 9권은 잡저 15편, 10권은 경의기문(經疑記文) 등 395편이 실렸으며, 11권은 부록으로 선생의 행장 등이 수록되었다. 이상에서와 같이 고려시대 명현인 서릉선생에서부터 일제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생몰연대를 기준으로 약 50여 유학자를 살펴보았다. 이 작업은 유학자 각각의 문집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 분들의 문집을 살피는 것은 저자의 사상과 문장력을 살펴볼 수 있다는 것 이외에도 활동 당시의 인맥 연결과 문학·교육활동 등을 알 수 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의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미진한 점이 없지 않다. 첫째 이번 작업의 대상자를 생몰연대 기준으로 일제시대까지로 한정함으로써 해방 이후까지 활동하였던 분들이 제외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이 지역의 유학이 마치 해방 이후에는 단절되어버린 듯한 오해를 살만하지만, 해방 이후 유학자의 평가를 유보하면서 아울러 이 작업을 향후 과제로 남기고자 한다. 둘째 문집이 전하지 않는 많은 유학자들이 제외되었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문집이 전하지 않더라도 커다란 족적을 남긴 유학자가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행적을 기록하지 못한 점에서 아쉽다. 이같은 아쉬움은 또다른 기회에 해결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의 유학자들을 총괄적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다소의 위안을 삼는다. 아울러 이 고장의 문풍(文風)이 계속되어 지금보다도 더욱 발전있는 문인(文人)이 배출되기를 기대해 본다. (박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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