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릿글
- 제1절 인구 및 경지면적의 변화
- 제2절 농업생산의 변화
- 제3절 쌀 생산기술의 변천
- 제4절 농업투입 요소의 변화와 주요농정실적
- 제5절 농업수리시설
- 제6절 농지제도와 토지정책
- 제7절 농업인력 및 경영주체 육성
- 제8절 농업관계기관 및 단체
제6절 농지제도와 토지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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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에 실시된 농지개혁법에 의하여 우리나라의 농지제도는 그 기본이 마련되었다. 농지개혁법은 기생지주적 소작제의 폐해를 없애 자작농을 창설, 농업생산력을 높이고 사회를 안정시켜 민주주의국가의 기반을 다지는데 그 목표가 있었다.
농지개혁전 1949년 6월 남한의 총경지면적은 2,070,577ha이었고 이 중 논이 1,236,559㏊, 밭이 834,018㏊이었다. 총경지면적 중 순소작지는 2.8%, 자소작지 59.9%, 귀속농지 11.2%이었다. 농지개혁 때 농지는 유상매수, 유상분배이었고, 요매상농지는 총경지면적의 29%에 해당하는 601,049㏊이었고 이 중 순소작지가 597,430ha, 3정보 이상지가 39,190ha이었다.
농지개혁전 농가호수는 2,473,833호이고 이 중 소작농가가 21.3%, 자작농가 37.4%, 소자작농이 41.3%로 구성되어 있다. 실제 농지개혁의 대상이 된 농지면적은 논 388,472ha, 밭 150,497ha, 도합 538,969ha로 전체농지의 약 26.5%에 상당한 면적이며 분배농지는 분배대상으로 올랐던 면적보다도 약 15%가 준 면적이나 이 개혁을 통해 소작제의 불식과 봉건적인 농촌사회의 민주화에 크게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농지개혁 이후 40여년이 경과한 1994년말경까지 농지소유 한도를 비롯하여 농지임대차의 허용, 소작료율 등을 정하지 못하고 논난을 거듭하였다. 그러던 중 '94년 12월 2일 농지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되어 제정되고 '94년 12월 22일에 농지법(법률 제4817호)을 공포, 이어 '96년 1월 1일자로 농지법이 시행되었다.
'99년 3월 31일자로 농업진흥지역 밖에서는 5정보를 초과할 수 없고, 농업진흥지역내에서는 소유제한이 없도록 법이 개정되었다. 농지임대차나 사용임대차허용관계 규정도 명문화하였다.
1980년과 1999년의 장성군 토지지목별 면적분포 상황을 비교하여 보면은 [표 4-35]와 같은데 과세지는 1980년에 비해 1999년이 감소하였고, 비과세지는 반대로 1999년에는 1980년에 비하여 증가하였다. 특히 도로와 제방면적이 증가하였다.
[표 4-35] 토지 지목별 면적분포
과 세 지 | 비 과 세 지 | ||||
---|---|---|---|---|---|
지 목 | 면 적(ha) | 지 목 | 면 적(ha) | ||
1999 | 1980 | 1980 | 1999 | ||
밭 | 4,328 | 3,790 | 도 로 | 901 | 1,459 |
논 | 9,045 | 8,762 | 철 도 용 지 | 76 | 115 |
대 지 | 890 | 101 | 하 천 | 1,113 | 1,066 |
임 야 | 33,474 | 32,889 | 제 방 | 14 | 951 |
과 수 원 | 45 | 107 | 구 거(溝渠) | 813 | 1,221 |
목 장 용 지 | 7 | 89 | 유 지(溜池) | 854 | 987 |
공 장 용 지 | 31 | 114 | 묘 지 | 145 | 134 |
종 교 용 지 | 5 | 8 | |||
계 | 47,820 | 45,852 | 계 | 3,921 | 5,941 |
자료: 장성군사(1982). 장성통계연보.1981. 농림부 농업조사 1989. 1999.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