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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입향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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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절 그밖의 성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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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 많은 성씨들이 장성에 살고 있지만 자료가 없어 모두 기술할 수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뒷날에 추가와 보완을 거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특히 진주강씨(晋州姜氏)·탐진최씨(耽津崔氏)·밀양손씨(密陽孫氏)·김녕김씨(金寧金氏)·남원양씨(南原梁氏)·의령남씨(宜寧南氏)·무송유씨(茂松庾氏)·동래정씨(東萊鄭氏)·광산승씨(光山承氏)·해평윤씨(海平尹氏)·담양전씨(潭陽田氏) 등의 성씨는 자료를 구하지 못하여 기록할 수 없어 아쉽다. 그러나 그 후손들이 흩어져 살고 있거나 자료를 제공하지 않았지만 임진왜란 때 양산군수로 동래성에서 순국한 직산조씨인 조영규(趙英圭) 그리고 입암산성을 지키다가 순국한 윤진(尹軫)에 대해서 간략하게 서술하겠다.

조영규는 본관이 직산이며 명종 때에 무과에 급제하여 7곳의 수령을 거쳐 양산군수로 부임해 임진왜란을 당했다. 왜군이 밀려오자 경상병사 이각은 도망쳤으나 동래부사 송상현(정읍출신)과 함께 동래성을 지키다가 장렬하게 순국하여 동래의 안락서원과 양산의 충렬사, 그리고 장성의 모암서원에 배향되었다. 직산조씨는 고려말에 북일면 누태마을로 입향했다가 조영규 군수의 조부 때 북이면 백암으로 이거했는데 후손은 그 곳에 3∼4호 살고 있다.

윤진은 본관이 남원이며 사간인 강원(剛元)의 아들로 태어나 선공감 봉사로 제수되었으나 사양하고 장성에서 살고 있었는데 왜란이 일어나자 기효간과 같이 남문창의의 의병을 발의했고 정유재란 대 입암산성의 수장에 임명되어 처와 아들을 데리고 성으로 들어 갔는데 왜적이 육박하자 수령들이 모두 도망쳤지만 끝까지 성을 지키다가 장렬하게 전사했고 처도 순절하였다. 그런데 남원 윤씨가 언제 어떻게 장성에 들어와서 살게 되었고 그 후손들이 얼마나 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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