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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입향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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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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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역사기록이 있기 이전의 선사시대로부터 볼 수 있으나 어떤 성씨의 인물들이 살았는지는 알 수 없다. 부족국가 시대에는 마한에 삼국시대에는 백제에 속했던 장성은 신라의 삼국통일로 백제의 성씨들은 거의 소멸되었고 신라의 성씨들만 남아 있거나 중국에서 건너온 성씨들이 있을 따름이었다.

그후 고려시대부터 상부층에 성이 주어졌고 고려중기부터 일반 백성들은 성을 사용했다고 하나 대부분의 백성들은 성씨가 없다가 조선말부터 일제시대에 거쳐 호구조사와 호적제가 철저하게 시행되면서부터 모든 사람이 성을 갖게 되었다. 그러므로 유력씨족이나 상층부의 성씨들만 족보를 만들고 가승(家乘)을 작성하여 가문을 빛내고 자랑으로 삼았을 뿐이다.

그런데 고려시대부터 상층부의 유력씨족들은 본관과 성을 갖고 가문을 형성하여 소중하게 전통과 명예를 지켜왔는데 성씨의 이동은 주로 정치적 상황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즉 고려말·조선초의 왕조교체에 불복하여 절의를 지키겠다고 지방에 은거한 경우와 조선초의 정변이나 사화와 당쟁에 화를 입어 은둔을 택한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동학농민혁명이나 가깝게는 한국전쟁 등으로 엄청난 이동이 있었다.

그러므로 장성에 어떠한 성씨들이 어떻게 들어와서 살게 되었는가를 정확하고 자세하게 살필 수는 없다. 그리하여 몇가지 기록들인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편), 호남읍지의 장성읍지(1899년편), 장성읍지(1927년편) 등을 정리하고 {한국인의 족보} (1977년판, 일신각) 등을 참고하여 각 마을이나 씨족들의 신청을 받아 정리하였으므로 후일의 보완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장성에는 신라말에 입향한 철원주씨가 있고 고려말의 혼란기나, 고려말·조선초의 왕조교체에 불복하여 절의를 지키기 위해 은거한 장흥고씨, 청송심씨, 황주변씨, 상산김씨, 신평송씨가 있으며, 다른 곳으로 은둔했다가 뒤에 입향한 광산김씨, 옥천조씨 등이 있다. 그리고 조선초의 정변을 피해 입향한 울산김씨와 하음봉씨, 태인박씨, 강릉유씨, 사화와 관련하여 입향한 행주기씨, 경주이씨 등이 있으며, 그밖에 다른 성씨들이 장성에 들어와 살게된 입향조들을 시대별로 나누어 살펴 보겠다.

그런데 입향성씨들의 고찰은 임진왜란 이전까지를 원칙으로 하였고, 그 후의 입향성씨들도 정확한 증빙자료를 제출한 경우 수록하였으며, 많은 성씨들이 집단적으로 장성에 거주하고 있는 경우도 수록했는데 성씨들이 제출한 족보나 행장을 참고로 하였기 때문에 사실여부를 확인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그 순서는 가나다 순으로 하였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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