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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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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립공원의 역사

국립공원의 역사는 1870년 8월, 탐험대에 의해 미국 몬타나주의 옐로스톤 지역의 놀라운 자연현상을 탐사한 것을 계기로 '놀랍고 신비로운 자연현상, 사유 아닌 공유, 모든 국민의 이용과 즐거움'이란 생각이 국립공원으로 정립된 이래, 1872. 3. 1. 우리나라 남한 면적의 10%에 해당하는 8,991.39km2의 옐로스톤 지역이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에 대한 지정 논의는 일제 강점기인 1935년 일본인 다무라(田村剛) 등 학자들에 의해 '금강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는 건의'로부터 시작되었으나, 중일전쟁(1937년)이 시작되고 제2차 세계대전(1941년)이 시작되면서 일본 전체의 국립공원 행정이 정체됨으로써 빛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8. 15 광복 후에도 1960년대 초까지는 논의될 기회조차 없다가 1961년 군사혁명이 일어난 후 군사정부에서 경제개발 계획과 국토개발 계획을 마련하는 과정 중에 국립공원 지정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1962. 6. 30.∼7. 7.까지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제1차 세계국립공원 회의에 우리나라 대표를 참석시켜 자료 수집, 재건국민운동본부의 지리산 지역의 국립공원 지정을 위한 조사계획 등의 활동을 거쳐 1967. 3. 3. 법률 제1909호로 공원법이 공포됨에 따라 우리나라의 국립공원 제도의 틀이 잡히게 되었다.

그리고 1967. 12. 29. 우리나라 최초로 지리산 국립공원이 지정된 이후 1988. 6. 11. 변산반도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것을 마지막으로 2000년 말 현재 총 20개의 국립공원을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국립공원 면적은 6,473.113km2(바다 2,648.543km2 포함)로 전 국토면적의 6.5%(육지만으로는 3.8%)에 이르고 있다. 또 국립공원 관리청도 1967년 지리산 국립공원이 최초로 지정된 이후 약 20년 간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하여 왔으나 관리 주체의 다원화와 개발 위주의 관리정책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도출되어 1986년 국가가 직접 관리하기로 하여 1987. 7. 1. 국립공원 관리공단을 설립하였다. 그리고 1990년까지 건설부장관이 관리하고 있다가 1990. 12. 27. 법률 제4268호로 공포된 법 개정에 의해 내무부장관으로 변경되었다.

[표 7-16] 국립공원 지정현황 (2000년 12월 말 현재)

국립공원 지정현황 - 지정순위, 공원명, 위치, 공원구역(지정일, 면적), 공원보호구역면적, 비고 제공 표
지정순위공원명위 치공원구역공원보호구역면적(㎢)비 고
지정일면적(㎢)
6,473.11122.2.07육지3,824.57
해면2,648.54
1지리산전남.북, 경남'67.12.29440.48535.225
2경주경북'68.12.31138.16-
3계룡산충남'68.12.3161.1482.16
4한려해상전남, 경남'68.12.31510.32334.7해상 344.763
5설악산강원'70. 3.243734.7
6속리산충북, 경북'70. 3.24283.41.02
7한라산제주'70. 3.241492.35
8내장산전남.북'71.11.1776.03212.561
9가야산경남.북'72.10.1380.1634.393
10덕유산전북,경남'75. 2. 1219-
11오대산강원'75. 2. 1298.51.98
12주왕산경북'76. 3.30105.5820.698
13태안해안충남'78.10.20328.990.09해상 290.300
14다도해해상전남'81.12.232,344.91-해상 2,004.480
15북한산서울, 경기'83. 4. 278.45-
16치악산강원'84.12.31182.092.34
17월악산충북, 경북'84.12.31284.53.172
18소백산충북, 경북'87.12.14320.5-
19월출산전남'88. 6.1141.8816.818
20변산반도전북'88. 6.11157-해상 9.000

그러나 1995년 본격적인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해당 지방자치단체로 국립공원 관리권의 이양을 요구하였으나,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국토 자연환경 보호를 이유로 1998. 2. 28. 법률 제15734호로 환경부로 이관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표 7-17] 연도별 국립공원 이용객 추세 (단위 : 천명)

연도별 국립공원 이용객 추세 - 구분, 평균, 연도별('90, '91, '92, '93, '94, '95, '96, '97, '98, '99) 제공 표
구 분평 균연 도 별
'90'91'92'93'94'95'96'97'98'99
탐방객26,55627,89626,94126,46726,64528,20429,02028,16827,16422,10422,955
입장객20,35716,96816,55919,03320,02922,26323,72522,93822,87019,01520,170

[표 7-18] 계절별 국립공원 입장객 분포현황 (단위 : 천명)

계절별 국립공원 입장객 분포현황 - 구분, 계, 봄, 여름, 가을, 겨울 제공 표
구 분봄(3~5월)여름(6~8월)가 을(9~11월)겨 울(12~2월)
입장객('90~'99년)203,57151,34068,19961,03722,995
비 율100%25%34%30%11%

(2) 내장산국립공원 백양사 지구

백양사 최초의 숙박업소는 1935년 경 당시 승려였던 금파 스님에 의해 건립된 백양관으로, 백양사 일광정 남쪽 200m 지점의 길 동편에 15개의 객실을 갖춘 본관과 별관, 식당 3동의 목조건물이 있었으나, 1949년 폐업하고 건물은 전라북도 정읍으로 이축했다. 그리고 1955년 백양관 옛터 맞은편에 백양여관이 생긴 후부터 백양사를 찾는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여관, 식당, 기념품상회 등이 자연발생적으로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백양사에 1971. 6. 3. 전기가 처음 들어오고 1971. 8. 25. 전화가 개통된 후 1971. 11. 17. 건설부 공고 제101호에 의해 전라남·북도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백암산, 입암산, 내장산 일대를 한데 묶어 명칭을 내장산 국립공원으로 하여 우리나라에서 여덟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지역 주민들은 백양사의 주변 경관이 뛰어나 예로부터 대한 8경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으며, 내장사가 과거 백양사의 말사였고, 백암산 지구 내 설치된 각종 안내 표지판에도 내장산 남부지구로 표기함으로써 타 지역 주민이나 관광객들이 백암산을 내장산의 일부로 오해할수 있는 소지가 있을 뿐만 아니라 백암산 국립공원 지역을 내장산 관리사무소가 관할함으로써 장성 군민들의 자긍심 훼손과 거부감이 증폭되었다.

[표 7-19] '90∼'99년 월별 입장객 분포 현황 (단위 :㎢, 명)

'90∼'99년 월별 입장객 분포 현황 - 공원명, 면적, 연간 평균 입장객, 월별입장객분포비율(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제공 표
공원명면 적연간 평균
입장객('90~'99)
월별입장객분포비율(%)
1월2월3월4월5월6월7월8월9월10월11월12월
6,473.1120,357,0704.53.35.39.310.689.915.55.315.29.53.4
지리산440.4853,041,0303.42.34.79.7107.611.919.64.413.610.32.5
계룡산61.1481,327,2756.64.96.7119.96.97.210.15.715.6114.5
한려해상510.323802,1304.33.26.211.411.46.813.223.93.276.33.2
설악산3733,056,1535.83.74.5911.58.38.213.56.5196.33.8
속리산283.41,731,1953.22.65.211.513.710.19.111.75.415.78.92.9
내장산76.0321,228,0992.92.13.265.13.54.56.83.63030.12.2
가야산80.163914,3624.73.36.312.813.17.96.910.1513.311.35.4
덕유산219548,1284.92.54.64.56.67.216.825.73.610.95.87.2
오대산298.5817,6193.32.43.17.411.59.111.619.55.818.85.42.1
주왕산105.582416,4693.423.56.89.96.27.613.34.324.915.42.7
태안해안328.99398,5611.711.82.64.34.427.151.61.41.91.21.1
다도해 해상2,344.91170,0191.20.937.210.38.220.2393.14.31.80.8
치악산182.09436,9174.73.65.17.3108.57.811.45.923.19.63
월악산284.5725,7353.72.84.67.710.28.412.219.94.514.38.73.1
북학산78.453,370,1595.757.910.411.19.28.310.67.512.57.74.1
소백산320.5272,2166.14.13.76.521.318.37.611.83.49.24.93.1
월출산41.88233,4734.53.57.512.99.66.2814.3512.812.23.5
변산반도157867,5305.13.54.68.910.17.515.424.10.57.463.9

이에 내장산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직후부터 백양사개발위원회(회장 김동호), 백양사지구개발위원회(회장 김재완), 향토문화개발협의회(회장 정채균)를 비롯하여 1978년 노령산관광개발위원회(회장 나관주) 등을 구성하여 백양사 개발 요구와 함께 백암산·입암산 지구를 내장산 지구와 별도로 분리하거나 또는 '노령산 국립공원'으로 명칭을 변경해 줄 것을 관계부처에 건의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 뿐만 아니라 1993년 12월부터 군과 군의회, 각급 유관기관·사회단체 등의 명의로 수 차례에 걸쳐 내장산 국립공원을 노령산맥의 주봉인 내장산과 백암산 일대를 총칭하는 '노령산 국립공원'으로 명칭을 변경하거나 또는 전남·북을 경계로 전남 지역은 '백암산 국립공원'으로, 전북 지역은 '내장산 국립공원'으로 구분하여 줄 것을 줄기차게 요구하였으나 지금까지도 관철되고 있지 않다.

[표 7-20] 내장산 국립공원 용도지구별 현황 (단위 :㎢)

내장산 국립공원 용도지구별 현황 (단위 :㎢) - 면적, 자연보존지구, 자연환경지구, 취락지구, 집단시설지구 제공 표
면적자연보존지구자연환경지구취락지구집단시설지구
76.03212.58716.60%62.7782.60%0.2940.40%0.3810.50%

[표 7-21] 내장산 국립공원 토지소유 현황 (단위 :㎢)

내장산 국립공원 토지소유 현황 - 계, 국유, 공유, 사유, 사찰 제공 표
국 유공 유사 유사 찰
76.03228.13837.00%0.130.20%26.90435.40%20.8627.40%

[표 7-22] 내장산 국립공원 시. 군. 구별 면적 현황 (단위 : ㎢)

내장산 국립공원 시. 군. 구별 면적 현황 - 구분, 계, 시.군.구별 면적 제공 표
구 분시.군.구별 면적
76.032
전라남도32.232(42.4%)장성군 32.232
전라북도43.800(57.6%)정읍시 35.000, 순창군 8.800

2. 홍길동 관련 관광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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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백여 년 만에 역사 속의 실존인물로 부활한 홍길동

지금까지 허균이 쓴 최초의 한글소설 속의 주인공으로만 알려졌던 홍길동이 장성군에서는 황룡면 아곡리 아치실 마을에서 태어난 실존인물로 그동안 주민들의 입을 통해 전설과 민간 구담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학계에서는 60년대 말부터 연구대상으로 '홍길동이 역사 속의 실존인물'이라는 사실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고, 80년대 중반부터는 장성문화원을 중심으로 사실 규명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1997년 2월부터 공무원 제안제도에서 채택된 '실존인물, 홍길동 생가복원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그런데 '97년 3월 말경 강원도 강릉시에서 소설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 선생의 선양사업 일환으로 홍길동을 강릉시의 마스코트로 정한다는 사실을 언론보도를 통해 인지하고, '97년 4월 초부터 역시 언론매체를 통해 '홍길동은 장성의 실존인물'임을 꾸준히 부각시키는 한편,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에 홍길동 학술연구 용역을 의뢰했다.

홍길동 학술연구 용역 결과, '조선왕조실록'과 황윤석이 쓴 조선시대 야담집인 '증보 해동이적' 등 각종 문헌과 현장조사를 통해 장성 아치실 마을에 있는 '생가터'와 홍길동이 어렸을 적에 먹고 자랐다는 '길동샘'을 비롯하여, 홍길동이 활빈당의 근거지로 사용하였던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계실리 무성산(614m) 정상에 있는 '홍길동 산성' 등이 역사적으로 사실임이 밝혀지게 되었다.

특히 허균 선생의 홍길동전에서 나오는 이상국가인 율도국이 일본 오키나와로 밝혀짐으로써, 홍길동은 조선시대 연산군 6년(1500년) 음력 10월 22일 의금부에 투옥된 이후, 추종자들과 함께 일본 오키나와(당시 유구국)까지 진출해서 조공을 거부하는 등 당시 일본 봉건왕조에 맞서 민권운동을 펼친 민중해방의 선구자 또는 영웅으로 추앙 받고 있는 일본 오키나와 역사 속의 인물인 오야케 아카하치 홍가와라(洪家王)로 밝혀지고 있다.

[사진 7-15] 일본 오키나와 석원도에 있는 홍가와라 기념비 [사진 7-15] 일본 오키나와 석원도에 있는 홍가와라 기념비

(2) 홍길동 학술연구 결과

1)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에 '강도 또는 도적'으로 연산 6년(1500년) 음력 10월 22일 의금부에 체포된 것을 시작으로 10여 차례의 직접적인 기록(연산군일기 5건, 중종실록 4건, 선조실록 1건)과 함께 조선왕조실록 전체적으로 100여 차례의 홍길동 관련 사례가 언급되고 있다.
연산 6년(1500년) 10. 22(계묘) : 강도 홍길동을 잡았으니 나머지 무리도 소탕하게 하다.
연산 6년(1500년) 10. 28(기유) : 홍길동을 도와준 엄귀손의 처벌을 의논하다.
연산 6년(1500년) 11. 28(무인) : 정승들에게 홍길동의 무리인 엄귀손이 어찌 당상의 자리에 올랐는지 물어보다.
연산 6년(1500년) 12. 29(기유) : 홍길동의 죄를 알고도 고발하지 않은 권농, 이정 등을 변방에 보내기로 하다.

2) 증보 해동이적(78번째 설화인 정중 서생에 기록)

조선조 숙종 때 홍만종이 쓴 '해동이적'을 순양자 황윤석이 증보하여 펴낸 '증보 해동이적'에 '國朝中葉以前 有洪吉童者 相臣逸童孼弟也, 洪吉童居 長城亞次谷(조선 중엽 이전에 홍길동이란 자가 있었는데, 이자는 상신 일동의 배다른 동생이다. 홍길동은 장성 아차곡에 살았다.)'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 기록의 장성 아차곡은 황룡면 아곡리에 있는 아치실 마을의 한자명으로 밝혀짐으로써 홍길동은 500여 년 만에 장성군 황룡면 아곡리 아치실 마을에서 태어난 역사 속의 실존인물로 밝혀졌다.

3) 남양홍씨 족보

조선조 말에 펴낸 남양홍씨 족보에는 서자인 홍길동을 삭제하고, 아버지인 홍상직의 아들로 일동과 귀동 만을 기록하고 있다.

4) 만성대동보

명문가의 족보들을 모아 성씨별로 주요 인물만을 모아 기록한 것으로 1920년 경 편찬되었다. 만성대동보에 의하면 홍길동은 남양 홍씨로 형 일동과 함께 홍상직의 아들로 올라있으며, '도술을 부렸던 자'라고 기록되어 있다.

5) 기타

이외에도 조선 후기 예조판서를 지낸 이희준이 쓴 '계서야담',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이원명이 쓴 '동야휘집', 서거정이 쓴 '필원잡기' 등 각종 문헌에 홍길동의 다양한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3) 홍길동의 유·장년기 유적지

1) 홍길동 생가터와 길동샘

홍길동이 태어난 황룡면 아곡리 아치실 마을에 있는 생가터에는 오랜 세월의 풍상을 겪은 듯한 감나무와 시누대(山竹)에 둘러싸여 있는데, 지금도 주변에는 조선 초기의 기와 파편과 조선백자 파편들이 많이 흩어져 있다.
2001년 3월부터 5월까지 2개월 간 전남대학교 박물관 팀에 의해 황룡면 아곡리 424번지 일원에서 실시된 홍길동 생가터 유구 발굴조사 결과 길이 38m에 이르는 축대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건물 터에는 조선 초기로 추정되는 분청사기 파편과 다수의 기와 조각이 함께 출토되었다.

[사진 7-16] 길동샘 [사진 7-16] 길동샘

특히 임금이 하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大'자와 '내섬(內贍)'이란 글자가 새겨진 자기도 함께 발굴되었는데, 이는 당시 호조판서를 지낸 홍길동의 배다른 형인 홍일동에게 임금이 하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발굴팀 관계자가 밝혔다.
또 건물터 서남쪽 끝 부분에는 배수시설 또는 연못으로 보이는 너비 7m 깊이 1m 규모의 도랑이 발견돼 생가 규모가 꽤 컷음을 암시하고 있다.

[사진 7-17] 홍길동 생가터 유구발굴조사 현장 [사진 7-17] 홍길동 생가터 유구발굴조사 현장

전남대학교 박물관 유구 발굴조사팀은 '발굴

유물은 14세기 말부터 15세기 초의 것으로 보여 홍길동이 생존했던 시기와 거의 일치하며, 주춧돌 등으로 미루어 당시 상류층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생가터에서 10여 m 아래에 있는 암탉골 계곡에는 홍길동이 어렸을 때 먹고 자랐다는 '길동샘'이 사시사철 끊이지 않고 흘러내리고 있다. 길동샘은 70년대 말까지 아치실 마을 사람들이 식수로 사용했으나 지금은 각 가정마다 지하수를 이용하기 때문에 사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나이가 많은 촌로들은 이 샘물을 먹으면 길동이와 같은 용맹한 아들을 낳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왔다고 한다.

[사진 7-18] 홍길동 생가터에서 출토된 유물 [사진 7-18] 홍길동 생가터에서 출토된 유물

2) 활빈당의 근거지인 홍길동 산성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계실리 무성산 정상(614m)에 소재하고 있는 무성산성은 홍길동이 자신을 추종하는 무리들을 이끌었던 활빈당의 활동 근거지인 '홍길동 산성'으로 불리기도 한다. 홍길동 산성은 공주 일원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어 여기에서는 인근 고을들이 한 눈에 들어오는 전략 요충지로 산에 널려 있는 자연석을 정상으로 가져다가 쌓은 것이다. 이 지역에는 이외에도 홍길동이 은거하였다는 홍길동 굴에 대한 전설도 전해오고 있다.

(4) 홍길동 캐릭터 사업 추진

군에서는 그동안 의적 정도로 축소되어 전해오는 실존인물 홍길동의 역사적 사실을 재조명하고, 21세기를 새롭게 열어갈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그의 지혜와 용맹, 그리고 일본 오키나와까지 진출한 세계적인 지도자 상을 새롭게 부각시키는 동시에 전국 지방자치단체 최초의 문화사업이자, 21세기 지식산업인 캐릭터 산업에 뛰어 들었다.

[사진 7-19]홍길동 캐릭터 [사진 7-19]홍길동 캐릭터

군에서는 실존인물로 부활한 홍길동의 경제적 고부가가치를 창출해 나가기 위해 1997년 12월부터 1999년 3월까지 73종의 홍길동 캐릭터(기본캐릭터 25, 보조캐릭터 48)를 개발하고, 106건의 의장 및 상표등록을 완료하여 본격적으로 홍길동 캐릭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5) 홍길동 캐릭터의 지적재산권 분쟁 및 해결

1997년 2월부터 시작된 실존인물 홍길동의 학술연구 용역에 이어 캐릭터까지 개발하여 홍길동 관련사업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는 중에, 1998. 6. 20. 신문 지상을 통해 SBS가 자사 TV 프로그램을 통해 16부작 홍길동 드라마 방영을 계기로 콘소시엄사인 LG애드 등과 함께 형태만 바꾼 홍길동 캐릭터를 재개발한 사실을 인지하였다.

이에 군에서는 언론사, 대기업에서 장성군에서 개발한 홍길동 캐릭터를 도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최초의 문화사업을 넘보는 부당 행위로 간주하는 등 강력 반발하였다.그리고 6만 군민과 재경 향우들이 합심하여 1998. 6. 30.부터 7. 22까지 한 달여 동안 자치권 확보와 지역의 생존권 보호 차원의 서명·규탄대회, 불매운동을 비롯하여, 2회에 걸친 여의도 SBS 본사 앞 대규모 시위 농성 등을 강력히 전개한 결과, SBS와 LG애드 등이 홍길동 캐릭터 재개발을 포기하였다.

이로써 홍길동 캐릭터의 독자 개발권을 확보하였을 뿐만 아니라 실존인물 홍길동의 고장 장성의 이미지를 전국에 홍보함으로써 세계적인 캐릭터로 성장·발전할 계기를 마련한 바 있다.그러나 2001년 2월에는 (주)돌꽃 컴퍼니 대표 윤석화씨로부터 3억 원에 이르는 홍길동 캐릭터 저작료 및 상표권 손해배상청구소송이 제기되어 우리 군에서는 이에 굴하지 않고 정당한 법적 절차를 거쳐 승소하였다.

(6) 15세기형 홍길동 생가 복원사업 추진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군에서는 1999년 4월, 8만평 규모의 홍길동 테마파크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1차 사업으로 홍길동 생가복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현재 진행 중인 유구 발굴조사가 끝나는 대로 26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15세기형 전통한옥 8동, 110평과 청소년수련원 8동, 120평 등을 2001년 하반기 중에 착공하여 2003년에 완공할 계획으로 추진하고 있다.

[사진 7-20] 홍길동 생가복원 조감도 [사진 7-20] 홍길동 생가복원 조감도

3. 장성호 관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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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의 대표적인 휴양지로 자리잡은 장성호 관광지는 수려한 장성호를 끼고있어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멈추는 곳이다.

장성호 상류의 중간 지점인 장성호 관광지에는 야영장, 가족 유희장, 취사장 등의 공간이 조성되어 가족단위의 관광객들이 많아 찾는 곳이며, 인근에 수상스키를 즐길 수 있는 보트장이 있다. 최근 전망대와 야외 공연장이 조성되어 장성호와 주변의 수려한 경관을 한 눈에 즐길 수 있는 야외 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4. 필암서원 주변정비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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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암서원 성역화사업은 국가사적 제242호로 지정된 필암서원을 정비하여 국민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도학, 절의와 문학을 겸비한 하서 김인후 선생의 업적을 기리어 남도문학의 형성과 발전상을 재조명하기 위한 것이다.

필암서원 성역화사업은 황룡면 황룡리 필암서원 일대 17,500평의 부지 위에 1999년부터 2005년까지 7년 간 총 177억 원의 사업비를 투자하여 부지 매입, 서원 보수, 교육관 및 생활관 건립을 비롯하여 조경, 휴게시설 등 기반시설을 조성할 계획으로 있다.

1998년 7월, 필암서원 기본계획을 수립한 이후 1차 년도 1단계 사업으로 1999년부터 8억 원의 사업비로 전시관을 완공하였고, 2단계 사업으로 2000년부터 2001년까지 43억 원을 투자하여 기본·실시설계, 국토이용계획 변경, 토지매입, 서원보수 및 주변 기반정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앞으로 인근에 위치한 홍길동 생가복원 사업과 병행하여 아곡 박수량 선생의 백비, 축령산 휴양림, 동학 농민군 승전 기념공원, 그리고 142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2001년 9월에 완공된 장성문화센터와 황룡강 생태공원화 사업과 연계한 문화·관광벨트로 개발하여 전국 최고의 관광명소로 가꾸어 나갈 계획으로 있다.

5. 관광가로수 및 국토 공원화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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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은 21세기 미래의 관광자원을 조성하기 위해 민선자치 이후인 1996년부터 지금까지 주요 관광도로변 120km 구간에 7억 8천만 원을 투입하여 군나무인 단풍나무 6,399그루와 향토수종인 왕벚나무 8,840그루를 비롯하여 회화나무(일명 선비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등 총 1만7천1백 그루의 관광가로수를 식재하여 아름다운 관광 장성 만들기에 초석을 다지고 있다.

[사진 7-21] 관광 가로수 [사진 7-21] 관광 가로수

특히 관광가로수 식재 사업은 주요 노선별 특색을 살려 단풍거리, 왕벚꽃거리 또는 왕벚꽃과 단풍거리 등으로 각각 구분하여 조성하는 등 봄에는 왕벚꽃, 가을에는 단풍 등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수 있도록 미래지향적으로 가꾸고 있다.
앞으로 5∼10년, 더 나아가 100년 후 울창하게 자란 관광가로수는 가로수 자체만으로도 차별화 된 관광명소로 바뀌게 되어 연중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 2002년 월드컵에 대비하여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 관광객들에게 깨끗하고 정감이 가는 한국적 이미지 제공과 함께 광주 대도시권과 인접한 지리적 위치를 감안, 지역 특성을 살린 도로변 꽃길, 쉼터 및 소공원을 조성하는 국토공원화 사업을 1998년부터 대대적으로 전개해 나가고 있다.

[사진7-22] 국토공원화 사업 [사진7-22] 국토공원화 사업

국토공원화 사업은 일년생 화초 식재 등 일회성에 그치는 소모성 사업을 지양하고 도로변 공한지, 유휴지 자투리땅, 나대지를 활용하여 가로화단, 꽃길과 소공원 등 쉼터 조성을 비롯하여 도로변 절개지 녹화, 하천 수변 정비, 둔치공원 조성 등 다년초나 계절별 화목류를 중심으로 식재하는 것은 물론 간이 휴게시설이나 편익시설을 병행 설치하여 군민과 인근 광주 대도시민의 안락한 휴식공간으로 제공하고 있다.
지금까지 쉼터 7개소, 소공원 8개소, 가로화단 22개소를 설치하였고, 250km에 달하는 도로변 꽃길을 조성하여 우리 군을 찾는 탐방객들에게 볼거리 제공과 함께 사계절 아름다운 고장으로 기억되어 다시 찾고싶은 장성 만들기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표 7-23] 연도별 관광가로수 식재 실적

연도별 관광가로수 식재 실적 - 구분, 식재구간, 연장, 사업비, 수종별(계, 단풍, 왕벚, 회화, 느티, 이팝) 제공 표
구분식재구간연장
(㎞)
사업비
(천원)
수 종 별(본)
단풍왕벚회화느티이팝
총 계120783.57917,1006,3998,840381790690
'96 소 계52349,9007,8832,9514,932---
북하 약수∼북이 사가8.867,1901,4141,4141,375---
북하 약수∼담양군 경계527,2705745741,125---
북하 약수∼장성읍 상오12.595,7401,9635881,380---
북하 약수∼순창군 경계317,800375375610---
장성읍 단광∼광주시 경계8.447,8201,125 97---
장성읍 단광∼담양군 경계9.458,6591,380 345---
장성읍 영천∼장성읍 상오2.519,128610 ---
장성역 TMO0.43,89397 ---
삼계 사창 우회도로212,400345 ---
'97소 계22135,0993,1981,5371,661---
장성읍 백계∼고창군 경계1381,8641,936968968---
북이 사가∼고창군 경계848,0561,137569568---
북하 중평 우회도로0.53,10075 75---
황룡 쓰레기장 진입로0.52,07950 50---
'98소 계981,7001,782761640381--
북이 사가∼북이 원덕3.533,500760380380381--
황룡 장산∼황룡 아곡3.537,90076238126--
장안교∼장성여상고210,300260 --
'99소 계426,800537-457-80-
장성대교∼황룡 월평1.726,800300-220-80-
장성읍 기산∼장성읍 장안2197-197--
황룡 아곡∼황룡 금호0.340-40--
'00소 계30165,0803,100850850-710690
장성읍 상오∼황룡강제방317,000380850850-199181
황룡 월평∼황룡강제방10108,0801,020-511509
장성읍 안평∼북이 사가1740,0001,700-
'01소 계325,000600300300---
서삼 모암∼서삼 대덕325,00060030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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