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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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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군은 산자 수명하여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고장으로 일찍이 조종생은 장성의 형승을 '산이 둘러 있고 물이 굽이쳐 스스로 하늘이 이루었네(山回水曲 自天成)'라고 노래했으며, 암행어사 박문수는 '전라도에서 산수가 좋기로는 1. 장성, 2. 장흥'이라 하여 장성의 아름다움을 설파한 바 있다.

이와 같은 자연 조건은 장성을 산수가 좋기로 으뜸가는 고장으로 만들었으니 고불총림 백양사는 대한 8경에 속했고, 장성호 관광지에 있었던 봉덕연은 예로부터 호남 명천으로 유명했으며 이외에도 오동촌 방울샘, 옥정약수, 청류암 남천감로 등 약수터와 곳곳에 수많은 누각과 정자, 사원이 즐비하여 우리 장성을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으로 자랑하고 살아 왔다.

이와 같이 산수 좋은 장성은 풍수지리적으로도 천혜의 길지로써 '인걸은 지령'이라고 말한 바와 같이 훌륭한 인물을 많이 배출하여 예로부터 '장성에서 글 자랑을 하지 마라.(文不如長城)', '장성 양반', '한양에 있는 만개의 눈이 장성에 있는 눈 하나만 못하다.(長安萬目 不如長城一目)'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1. 장성읍의 관광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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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산강의 최상류인 황룡강

장성읍을 가로지르는 황룡강은 장성군의 젖줄이자 군민들의 쉼터 역할을 해왔다. 황룡강은 영산강의 최상류로 물이 맑고 물고기들이 많이 있어 지역 주민들의 천렵 장소로도 이름이 나 있는 곳이다. 장진보 주변은 지금도 물고기를 잡거나 낚시를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황룡강 상류인 장성읍 상오리 위에 1976년 완공된 장성호로 인해 그렇게 풍부했던 하천 유수가 끊김으로써 장성호가 생기기 이전의 그 맑고 아름답던 황룡강의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어 아쉬울 뿐이다.
현재 실시하고 있는 장성댐에서 광주광역시 경계인 임곡동까지 총 13.5km에 이르는 황룡강 둔치 생태화공원 계획이 완료되면 군민은 물론 인근 광주 대도시민들의 쾌적한 수변 공간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사진 7-3] 황룡강 [사진 7-3] 황룡강

특히 장성읍과 서삼면, 황룡면 북부 지역을 연결하기 위해 1998. 5. 24.에 완공한 장성대교(연장 202m, 폭 12m)는 단순한 교량 차원에서 벗어나 예술적인 감각을 최대한 살린 관광교량 역할을 하고 있다.

(2) 읍민의 휴식처이자, 호국영령이 잠든 장성공원

장성 읍민의 휴식장소인 장성공원은 1969. 5. 8. 건설부 고시 제279호로 31,000m2(9,377평)가 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1987. 8. 9. 전라남도 고시 제155호에 의거 30,700m2(9,286평)로 변경 지정되었다.
장성공원에는 1966년에 건립된 한말 의병장인 성재 기삼연 순국비를 비롯하여 1972. 9. 30.에 건립된 3·1 운동 열사 의적비와 6·25 동란으로 말미암아 조국과 향토 수호를 위해 산화하신 호국영령을 기리기 위해 1981. 3. 11.에 건립된 순국의열충혼탑 등이 있는 호국의 성지이다.

또 천년에 한번 맞이하는 뉴 밀레니엄의 벅찬 감동을 군민과 함께 공유하면서 6만 군민의 역량을 하나로 결집하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2000. 1. 1. 0시를 기해 제봉산에서 새 천년 해맞이 행사와 더불어 군의 영원한 발전과 대 화합을 위한 군민들의 염원을 후세에 전하기 위한 뉴 밀레니엄 기념비를 현충탑 앞에 건립하였다.그리고 2001년 5월에는 충혼탑 옆에 27.8m2(8.4평) 규모의 전통 양식의 팔각정과 156단의 공원 계단공사를 완료하여 새롭게 단장하였다.

(3) 전남 들녘의 젖줄인 장성호와 토속음식촌 미락단지

장성호는 백암산과 입암산의 골 깊은 계곡을 따라 흘러내린 황룡강의 상류를 막아 농업용수를 공급할 목적으로 1973년 7월 착공하여 1976년 10월 완공된 거대한 인공호수로, 1973년 완공된 호남고속도로와 함께 장성인의 생활패턴을 바꾸어 놓은 변화의 상징이다.
댐의 높이는 36m, 제방의 길이는 603m, 총 저수용량은 8,970만 톤으로 장성, 광산, 나주, 함평 등 4개 시·군·구의 농토 13,900ha를 적셔주는 전남 들녘의 젖줄 구실을 하고 있다.

[사진 7-4] 장성호 [사진 7-4] 장성호

최근 들어 장성호는 낚시터, 수상스키, 카누경기 등 전국적인 수상관광지로 더욱 각광을 받고 있다. 하얀 포말과 함께 수면을 가르며 질주하는 수상스키와 잉어, 향어, 붕어 등이 많아 강태공의 발길이 연중 끊이지 않는 장성호는 장성 관광의 중요한 몫을 하고 있다.

특히 봄철의 신록, 여름철의 녹음과 넓은 호수, 시원한 바람, 그리고 가을철의 호수에 물들인 가을 정서는 여러 계층의 다양한 관광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 있으며, 지난 1997. 7. 15. 착공된 장성호 순환도로가 완공되면 전남 최고의 수변 관광도로로 각광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그리고 장성댐 아래 넓게 설치된 주차장과 다목적 광장은 가족 단위의 휴식이나 직장 동료들 간의 체육과 친목활동이 가능하며, 인근 주변에 있는 토속음식촌 미락단지는 장성호에서 잡히는 민물고기로 만든 가물치회, 메기탕 등 전통 음식으로 관광객의 미각을 만족시켜 주고 있다.

(4) 행주대첩의 주역인 망암 변이중 선생을 모신 봉암서원

장성읍 장안리 장안 마을에 1981. 10. 20. 지방기념물 제54호로 지정된 봉암서원이 있다. 봉암서원은 임진왜란의 3대첩 중의 하나인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던 화차를 발명하신 망암 변이중 선생을 주향한 서원이다.
망암 선생은 어릴 때부터 글재주가 뛰어나 23세에 사마시를 거쳐 문과에 급제한 인물로 임진왜란 때 군량과 의병을 모집하고 무기를 개발하는데 온 힘을 쏟은 수학자이자, 발명가였다.그는 자신의 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문중 동생의 재산으로 화차 연구에 몰두하여 300대의 화차를 만들었고, 이 중에서 40여 대를 행주산성의 권율 장군에게 보내 행주대첩에서 왜군을 크게 무찌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임진왜란 초기부터 왜군의 조총을 제압할 수 있었던 화차는 종래의 화차를 크게 보완하여 왜군의 조총을 막을 수 있게 장갑을 씌우고 4면에 40개의 구멍을 내어 구멍마다 승자총통을 장치하였으며, 사람이 가운데 들어가서 사방으로 화살을 연속 발사할 수 있도록 고안된 무기였다.
육군사관학교에서 당시 설계도에 의해 복원된 화차의 성능을 시험한 결과 그 위력이 엄청나 선생의 과학적 지식을 놀라게 한 바 있는데, 시징당에는 당시의 화차모형을 비롯하여 각종 총통 등 유물 18종이 제작·전시되어 있다. 봉암서원 앞에는 황주변씨 삼강문이 서있는데, 이 삼강문은 한 대에 그것도 한 집안에서 열려, 충신, 효자가 동시에 나와야 세워졌다고 한다.

(5) 국가 위기 때에는 물빛이 변한다는 신비의 영천 방울샘

장성읍 영천리 오동촌 마을에 2001. 9. 27 지방기념물 제186호로 지정된 신비스러운 약수로 알려진 영천이 있다. 이 샘은 바닥에서 방울방울 물방울이 솟아오른다 하여 방울샘이라 부르는데, 물방울이 솟아오르는 것도 영묘할 뿐만 아니라 국가의 길흉대사를 예견하여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에는 그 물빛이 변한다는 전설이 깃들여 있다.

길흉사에 따라 변하는 물빛은 병란이 있을 것 같으면 붉은 색으로, 전염병이 들 것 같으면 흑색으로 변하고, 백색으로 변하면 풍년이 든다고 한다. 주민들에 의하면 동학 농민혁명 때와 6·25 동란 때에 물이 붉은 색으로 변하였다고 전한다.

방울샘에는 손가락 만한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사는데, 물방울이 방울방울 올라오는 것은 이 샘 아래 용왕이 숨쉬고 있는 현상이며, 물고기는 용왕의 사자들이라 하여 이 물고기는 절대로 잡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큰 가뭄에도 항상 일정한 양의 물이 흐르는 신비한 약수로 알려져 사시사철 찾는 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방울샘에서 개울을 건너 오동촌 마을 부녀회관 뒷편 언덕에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고경명 장군의 묘소가 있으며, 해주아파트 입구쪽 밭 가운데에는 고경명 장군의 신도비가 있어 이 곳의 역사적 의미를 더해 준다.

[사진 7-5] 방울샘 [사진 7-5] 방울샘

(6) 백제 말기 지배자급 무덤인 돌방 무덤

예로부터 물이 좋기로 이름난 장성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물이 좋아야 소주 맛이 좋다'는 말처럼 바로 인접해 있는 보해양조와 화니생수 공장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는데, (주) 보해양조 공장 입구에 백제 시대의 커다란 돌방 무덤이 있다.
그런데 이 곳 돌방 무덤은 현 위치에서 100m 떨어진 곳에 있었던 것을 지금의 위치로 옮겨와 복원해 놓은 곳인데, 백제 말기 지배자급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무덤 방은 지름 17m, 높이 3m 크기의 원형 봉분 안에 축조되었고, 1986년 발굴할 때 귀걸이, 목걸이용 소형구슬, 뚜껑접시 등 여러 가지 유물이 출토되었다.

(7) 장성의 역사 성산공원 비와 장성향교

장성읍 성산리에 있는 성산공원(1969. 5. 8. 건설부 고시 제279호로 공원으로 지정) 입구에는 비석들이 가지런히 자리잡고 있다. 1600년대 이후 장성현감이나 부사들의 공적비 등 30개의 비가 연대순으로 오른 쪽에서 왼쪽으로 정렬해 있는 비림이 있는데, 이 중에서 2개만이 본래의 좌대를 갖고 있으며, 그 외에는 1993년에 장성군에서 좌대를 복원하였다.

성산공원을 조금 못가서 우측으로 난 길을 쭉 따라가면 장성향교가 있다. 원래는 고려 때 북일면 오산리에 있다가 진원향교와 통합하여 장성읍 장자동으로 옮겼다.현 향교 건물은 조선 효종 9년(1658년)에 재이축한 것으로 대성전에는 공자 등 5성인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18현인의 위폐를 봉안하고 있으며, 1985. 2. 25.지방유형문화재 제105호로 지정되었다. 향교에 보관된 향적 등 소장 서적은 장성지방 향토사 연구와 조선 후기 향교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2. 진원면의 관광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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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정척사의 산실, 고산서원

진원면 선적리에 진원면사무소가 있는데 이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진원산성 터가 있다. 그리고 포장된 좁은 길을 따라 조금 더 들어가면 진원면 진원리에 조선시대 성리학의 6대가 가운데 한 분이신 노사 기정진 선생을 모신 고산서원이 고목나무 가지 사이로 모습을 들어낸다.
노사 선생은 조선조 중종 14년(1519년)에 일어난 기묘사화 때 낙향한 선비 집안의 후손으로, 평생동안 가난과 궁핍 속에서도 끊임없는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썼던 성리학계의 마지막 대가로 평가를 받았다.
노사 선생은 스스로 인격 수양과 학문 연마를 통해 퇴계 이황, 율곡 이이 이후 3백년간이나 계속된 주기·주리 논쟁을 지양하고 독창적인 학문체계를 세워 이를 매듭지었고, 위정척사론을 처음 주장하여 한말의병의 사상적 근거를 제시하였다.

장성을 '선비의 고장' 또는 '문향골'로 부르게 된 이유는 대원군이 장성을 문향 고을로 평한 데서 그 유래가 되었다. 그 당시 청나라 사신이 우리나라의 실력을 평가하고자 낸 글귀를 한양 선비들이 풀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을 때에 장성 고을에서 학문을 닦고있던 노사 선생에게 물으니 노사가 이를 명쾌하게 해석했다고 한다. 이에 조정 대신은 물론 청나라 사신들도 '서울의 수많은 학자가 눈 하나만 가진 장성의 노사만 못하다.(長安萬目不如 長城一目)'고 하여 그의 학문을 높이 평가했다.1982. 10. 15. 지방기념물 제63호로 지정된 고산서원에서는 일년에 두 번 제사를 지낸다. 담대헌 우측에는 산수유, 회화, 벚, 은행 등으로 이루어진 교목이 많이 있고, 좌측에는 노사 선생의 유품과 문집(1999. 7. 5. 지방유형문화재 제214호로 지정)을 보관하고 있는 장판각이 있다.

(2) 진원리 5층 석탑

고산서원에서 묘동이라고 불리는 마을에 들어가면 들판 가운데 세워져 있는 진원리 5층 석탑(1984. 2. 29. 지방문화재자료 제101호로 지정)을 볼 수 있다.원래 이 석탑은 탑골에 있었는데, 일제시대 때 일본인들이 자기 나라로 불법 반출하려고 이 곳까지 운반하였다가 천둥번개가 치며 천기가 심상치 않자 이에 놀라 버리고 도망쳤다고 한다. 그 후 마을사람들이 현재의 위치에 세운 것이다.

3. 삼서면의 관광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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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내 최고의 영정으로 알려진 익제 이제현 영정

삼서면 홍정리에 있는 가산서원에는 영정 중 국내 최고로 알려진 익제 영정이 1988. 3. 16. 지방문화재 자료 제164호로 지정되어 있다.익제는 고려시대의 문인인 문충공 이제현(1287∼1367년)을 말하며, 그의 5대 손인 이재인(장수현감 역임)이 모셔와 영당을 건립하고 봉안한 것으로 국내에 있는 영정 중에서 유일한 원본이며 국립박물관에 있는 것보다 더 오래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2) 육군 간성의 성지, 상무대

삼서면 학성리에는 조국 수호의 근간을 이루는 장교들의 교육 요람인 상무대가 있다. 학성리(鶴星里)라는 지명풀이에 의하면 별을 단 학들이 날아다니는 곳이라는 뜻으로, 상무대가 1995년 이 곳으로 이전한 후에 수많은 장성들의 출입이 빈번하고 헬리콥터를 타고 오르내리는 장군들의 반짝거리는 별들이 수없이 많은 것을 생각하면 옛 선인들의 지명 선정에 대한 선견지명을 엿볼 수 있다. 상무대에 이르기 전 부근 마을에는 심우신 장군을 모신 표의사가 있다. 표의 장군은 이 곳에서 의병을 일으켜 훈련을 했다고 하니 상무대의 입지가 예사롭지 않다. 1996. 9. 12. 표의 심우신 장군의 동상을 상무대에 세워 멸사봉공의 뜻을 기리고 있다.

4. 삼계면의 관광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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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성산(546.3m)

고성산은 호남 지역의 산으로는 그리 높지도, 그렇다고 해서 낮지도 않은 편으로 삼계면과 영광군 대마면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산맥의 방향에 따라 산세도 남북으로 주능선을 길게 늘어뜨리며 양옆으로는 자잘한 갈래 능선이 흘러내린다.

산의 중턱부터 갖가지 동물 모양을 닮은 아기자기한 바위들이 정상까지 이어지고 있고, 정상 부근의 억새풀도 장관이다. 고성산(古城山)이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고풍스런 산성이 산의 4부 능선 남사면에 빙 둘러 축조되어 있는데, 지금은 거의 대부분 허물어져 내린 채 방치되어 있다. 산성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전해 내려오지 않아 언제 축조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고성산 인근에 평상시에는 잔디에서 겨울에는 눈 위에서 가족 단위로 신나게 썰매를 즐길 수 있는 대화관광농원(삼계면 화산리 소재)과 애플관광농원(삼계면 월연리 소재)이 있다. 특히 대화관광농원에는 2001년 5월 호남에서 최초로 25m 높이의 번지 점프장이 개설되어 짜릿한 전율과 스릴을 느낄 수 있다.

주요 등산로

제 1코스 : 깃재 ∼ 암벽지대 ∼ 정상 ∼ 부성 마을(3시간 소요)
제 2코스 : 깃재 ∼ 암벽지대 ∼ 정상 ∼ 가랫재 ∼ 추동 마을(3시간 소요)
제 3코스 : 깃재 ∼ 암벽지대 ∼ 정상 ∼ 칼바위 ∼ 절암(3시간 소요)

(2) 물결을 보고 그 근본을 안다는 관수정

삼계면 내계리 천방 마을 입구에 1994. 2. 29. 지방문화재자료 제100호로 지정된 관수정이 있다. 관수정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었던 지지당 또는 관수정으로 부르는 송흠 선생이 중종 34년(1539년)에 건립한 것이다.

조선 중종 때 일어난 기묘사화로 인해 낙향하여 시냇가에 정자를 짓고 관수정이라는 액자를 걸어 자기의 뜻을 표현했다고 한다.정자의 이름을 관수정으로 한 것은 '물결을 보고 근본이 있는 것을 아는 것이며, 그 맑은 것을 보고 나쁜 마음을 씻은 후에 가히 관수라 할 것이다.'라 하여 관수정이라 하였다. 정자 내에는 하서 김인후 등 유명 문인들의 시가 현판 되어 있다.

(3) 고려 시대에 세워진 내계리 5층 석탑

삼계면 내계리에 있는 관수정 뒤쪽으로 좁은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아담한 5층 석탑(1986. 2. 7. 지방유형문화재 제131호로 지정)이 나온다. 내계리 석탑으로 불리는 이 탑은 고려 시대에 건립되었으며, 이 곳에 천방사라고 하는 거대한 사찰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소실되고 현재의 5층 석탑만 옛 영화를 간직한 채 쓸쓸히 서 있다.

5. 황룡면의 관광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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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존인물로 부활한 홍길동을 기리기 위한 홍길동로

호남고속도로 장성 I·C에서 남쪽으로 국도 24호선을 따라가다 황룡 5일 시장과 황룡강을 건너 우측으로 들어서면 '홍길동로'라는 비석이 보인다.
홍길동로는 1997년 2월, 공무원 제안으로부터 시작된 홍길동 생가복원 사업을 추진하던 중 그동안 소설 속의 주인공으로만 알고 있던 홍길동이 학술연구 결과 오백여 년 만에 황룡면 아곡리 아치실 마을에서 태어난 역사 속의 실존인물로 부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997. 10. 6. 장성군지명위원회조례의 규정에 의하여 지정되었다. 황룡면 장산리 내 국도 24호선에서 갈라지는 군도 8호선 시작 지점에서부터 아곡리 홍길동 생가터 입구까지 구간이 1997. 10. 13. 제67회 장성군의회 임시회에서 의결됨으로써 1997. 10. 24. 실존인물 홍길동과 오색단풍을 주제로 개최한 제2회 백양단풍 축제 첫날 행사로 홍길동로 명명식을 가졌다.

[사진 7-6] 홍길동로 [사진 7-6] 홍길동로

(2) 장태로 조총을 이긴 동학 농민군 승전 기념공원

황룡면 장산리에 죽창을 형상화한 대형 조형물이 우뚝 서있는 동학 농민군 승전 기념공원이 있다. 1894. 4. 23. 반 외세 반 봉건을 외치며 동학 농민군이 서울의 관군과 싸워 이긴 역사적 사실을 길이 후손에게 남기기 위해 동학혁명 100주년을 맞아 1994년 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1996년에 건립한 기념공원이다.

당시 까치능선이라 불리던 이 곳 황룡 전적지는 1998. 6. 10. 국가사적 제406호로 지정되었으며, 전봉준 장군이 이끄는 약 3천여 명의 동학 농민군과 서울에서 파견된 관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당시 관군의 지휘관이던 이학승 마저 전사하는 등 동학군이 크게 승리한 곳이다.
황룡 전적지는 승전지로써 황토현 전적지(국가사적 제295호)와 우금치 전적지(국가사적 387호)와 함께 동학 농민혁명의 역사적 의의가 큰 장소이기도 하다.

[사진 7-7] 동학농민군 승전기념공원 [사진 7-7] 동학농민군 승전기념공원

동학 농민군이 관군의 조총에 대항하기 위해 대나무를 길게 쪼개어 횡으로 엮은 장태를 굴리며 관군을 물리쳤다. 이 장면을 재현해 놓은 기념공원의 조각상이 인상적이며, 기념공원의 오른쪽 능선 밑에는 당시 관군 지휘관이었던 이학승의 순의비가 남아 있어 옛 격전지의 현장을 지키고 있다.

(3) 호남의 대표적 서원인 필암서원

황룡면 필암리에 1975. 5. 10. 국가사적 제242호로 지정된 필암서원이 있다. 필암서원은 선조 23년(1590년) 하서 김인후 선생(1510∼1560년)을 따르던 문인들과 호남 유림들이 중심이 되어 장성읍 기산리에 창건하였으나, 정유재란 때 병화로 소실되어 황룡면 증산동에 다시 건립하였다가 수해로 인하여 인조 2년(1624년)에 현 위치로 옮겨 복원하였으며, 정조 1년(1777년) 하서의 사위이자 제자인 고암 양자징(1523∼1594년)을 추배하였다.

특히 필암서원은 현종 3년(1662년) '필암'이라는 사액을 받았으며, 하서 선생이 호남에서 유일하게 문묘에 배향된 점에서도 이 지역의 선비문화를 대표하는 유적이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 서원을 감싸고 있는 가운데 평지에 자리잡은 필암서원은 선현에 대한 제사 공간과 교육 및 학문 수련의 공간을 비롯하여 그 밖의 장서보관 시설 등 조선시대 서원의 기본 구조를 잘 갖추고 있으며, 확연루의 현판 글씨는 우암 송시열이 직접 쓴 글이다.
필암서원은 옛 규모를 잘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1975. 5. 10. 보물 제587호로 지정된 필암서원 고문서(노비안, 원장선생안, 필암서원 집강안, 원적 등 14책 64매)와 인종이 하서 선생에게 하사했다는 묵죽도, 하서 유묵 등 60여 건의 문화재가 잘 보존되어 있다.

[사진 7-8] 필암서원 [사진 7-8] 필암서원

1868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전국의 958개 서원 중 47개소만 남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 필암서원은 살아 남았고 일제시대나 6·25 동란 때도 피해를 면했다.

하서 선생은 황룡면 맥호리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시를 잘 지었으며, 열 살 때는 김안국에게 소학을 배웠다. 1531년 성균관에 입학하여 퇴계 이황 등과 함께 학문을 연마하였는데 특히 성과 경을 중히 여겼으며 천문, 지리, 의약, 산수, 율력 등에도 조예가 깊었다. 동국성현 18현 가운데 유일한 전라도 출신으로 장성사람에게는 긍지를 갖게 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산수도 절로절로 녹수도 절로절로/ 산 절로 수 절로 산수간에 나도 절로/ 이 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 하여라'라는 유명한 자연가를 지었다.

필암서원에서는 전통적인 제례의식으로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는데, 제례식 때는 전국의 유림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지금도 매주 4회씩 선비학당을 개설 운영하고 있어 연중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4) 청백리로 유명한 아곡 박수량 선생의 백비

홍길동 생가터 입구에서 서쪽으로 500m 지점인 황룡면 금호리에 1984. 2. 29. 지방문화재자료 제105호로 지정된 아곡 박수량 선생의 묘소 앞에 백비가 있다.아곡 선생은 황룡면 아곡리에서 태어나 정2품 벼슬인 판서에까지 오른 인물로 25세 때에 등과하여 64세까지 39년 간이나 관직에 있었으나, 오직 공직자로서 사명에 충실했을 뿐 명예와 재물에는 아무런 욕심이 없는 청렴한 인물이었다.

그는 세상을 떠나면서 '고향에 장사를 지내되 묘를 크게 하지말고 비도 세우지 말라'고 유언했다. 명종께서는 선생의 부음을 듣고 사람을 보내 조의를 표하고 판서를 지낸 분이 운상비가 없어 고향으로 가시기가 어렵다는 말을 듣고 장례 비용을 마련해 주었으며 예장을 명하셨다. 그리고 서해바다의 돌을 골라 비를 하사하였는데, 비문을 새기다가 자칫 누를 끼칠까 우려하여 비문이 없는 비석을 세우니 이것이 그 유명한 백비이다.

그러나 명종이 지어주었다는 청백당은 정유재란 때 소실되고, 지금은 백비만 아곡 선생의 묘소 앞을 지키고 있다.

(5) 조선 제일의 황룡리라 불리는 요월정과 원림

황룡면 황룡리에는 백암산 등의 골 깊은 계곡을 따라 흘러 내려 장성 들녁을 관통하는 황룡강변에서 달을 맞는다는 요월정이 자리잡고 있다.요월정은 조선 명종 때 공조좌랑을 지낸 요월정 김경우(1517∼1559년)가 말년에 낙향하여 건축한 것으로, 당대 인근 지방에서 글께나 읊었던 선비들이라면 누구나 들렀음직한 곳이다. 빼어난 주변 경관과 정자 안에 하서 김인후, 고봉 기대승, 송천 양응정 등이 남겨놓은 수많은 싯구들이 이를 말해 준다.
황룡강과 마주하여 세워진 요월정에 올라서면 강 건너로는 옥녀봉과 대하고 아래로는 탁 트인 들판이 보이며, 정자 주위에는 송림 사이에 60여 그루의 백일홍 나무가 있어 특히 여름철이면 그 풍취를 더해 준다.

요월정 원림은 1985. 2. 25. 지방기념물 제70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요월정 앞은 황룡강 물줄기가 변하여 논으로 변해 있지만, 과거에는 황룡강 물이 흘렀고 잉어, 붕어 등 갖가지 물고기가 잡혔다고 하니 그 풍광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능히 짐작이 간다.

(6) 찾는 이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옥정약수

황룡면 옥정리 물통골에는 물맛 좋기로 유명한 옥정약수가 자리잡고 있다. 1924년 김기석이 처음 발견하였고 일본인 佐吉利吉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옥정약수는 그 후부터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어 찾는 이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7)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황룡 재래시장

황룡장은 매달 4·9·14·19·24·29일에 자연발생적으로 시장이 형성되는 5일 재래시장으로, 이 곳 주민들은 4·9장으로 불린다.1964. 10. 1. 정기시장으로 공식인가를 받아 담양, 정읍, 고창, 영광, 함평, 광주 등 인근 6개 시·군의 상인들과 주민들이 이용하였는데, 현재 103개의 장옥(연면적 818평)으로 크게 형성되어 호남 최대의 5일 재래시장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시대적 변화로 인해 대장간, 뻥튀기 기계의 소리 등 옛날의 활기찬 시장 모습은 차츰 자취를 감추고 있다. 군에서는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103동의 장옥 중에서 1차로 2001년 29동에 대해서 1억 2천여 만원의 사업비를 투입하여 현대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또 1941. 5. 4. 개장하여 오랜 전통을 잇고 있는 우시장은 원래 장성읍 영천리 1371번지에 있었으나 부지가 협소하여 황룡면 월평리 151-6번지 일대의 현재 위치로 이설하였다. 새벽 4시부터 개장되어 날이 훤하게 샐 무렵이면 파장이 된다.

6. 서삼면의 관광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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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축령산과 국내 최대의 삼림욕장인 축령산 휴양림

축령산은 노령의 지맥에 위치한 산맥으로 전남·북의 경계를 이루고, 6·25 전쟁 등 민족적 수난기에 깊은 상처를 남긴 산이다. 문수산이라고도 부르는 이 산은 서삼면 모암리와 북일면 문암리 일대에 자리잡고 있고 축령산 휴양림은 이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키 작은 소나무에 야트막한 산자락이 대부분인 남도에서도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울창한 산림지대이다.
30여 m는 족히 됨직한 아름드리 편백나무와 삼나무들이 한낮에도 하늘을 가릴 정도로 빽빽이 들어서 있어 외국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이 곳 수림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 절로 감탄을 일으키게 한다.

[사진 7-9] 축령상 휴양림 [사진 7-9] 축령상 휴양림

고 춘원 임종국 선생이 1956년부터 조림을 시작하여 축령산 90만평을 사시사철 푸른 녹지대로 조성해 놓았다. 숲 속에는 상록 수림대 특유의 깊은 스톤치드 향이 그윽해 마음까지 상쾌하게 만들어주고 있어 여름철 가족단위 피서지로 아주 적당하다. 2000년에는 산림청과 생명의 숲 국민운동본부가 주최한 제1회 아름다운 숲 가꾸기 전국대회에서 22세기를 위해 길이 보존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뽑혔다.

축령산 휴양림에서 고창 쪽으로 내려가면 50∼60년대의 경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금곡 마을 영화·민속촌이 있다.

주요 등산로

제1코스 : 서삼면 백년동 마을 ∼ 임도 ∼ 삼거리 주차장(고 춘원 임종국 선생 기념비) ∼ 헬기장 ∼ 능선 갈림길 ∼ 정상 ∼ 삼거리 주차장 ∼ 서삼면 대곡 마을(총 8.8km, 3시간 30분 소요)
제2코스 : 대곡 마을 ∼ 삼거리 주차장 ∼ 관리가옥 ∼ 능선 갈림길 ∼ 정상 ∼ 묘현사(총 7.8km, 3시간 20분 소요)

(2) 장성 최초로 건립된 모암서원과 칠현 유적비

서삼면 모암리에 1984. 2. 29. 지방문화재자료 제119호로 지정된 칠현 유적비가 있다.
선조 20년(1587년) 장성에서 최초로 건립된 모암서원이 있던 곳으로, 고종 5년(1868년) 대원군의 서원 훼철령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순종 3년(1909년) 절효공 서능 선생을 비롯한 7현의 단비를 모암서원 터에 세움으로써 모현 7현단이라 하여 현재 단비 7좌만 남아 있다.

7. 북일면의 관광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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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절효공 서능 선생의 정려비

북일면 박산리에 1988. 3. 16. 지방유형문화재 제162호로 지정된 절효공 서능 정려비가 있다.
절효공 서능 선생은 고려 고종 때 북일면 박산리 작동 마을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효심이 지극했을 뿐만 아니라 학문에서도 뛰어나 벼슬이 문하시중에 이르렀다. 그러나 절효공은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한 지극한 효성으로 벼슬을 사양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정려비는 선조 11년(1578년) 장성 사람들에게 서능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후손들과 향유들이 건립하였다. 이 비석 위에는 절효공의 어머니 병을 고쳤다는 개구리를 네 모서리에 조각하여 각각 올려놓았으며, 그 가운데에 큰 개구리를 올려 총 다섯 마리의 개구리가 남아 있다.절효공은 이후 인근에 있는 서삼면 모암리에서 많은 제자들을 가르쳤으며, 후세에 이 곳에 모암서원을 지어 그의 정신을 받들고 제사를 지냈다.

(2) 50∼60년대 영화 촬영의 적지인 금곡 마을 영화·민속촌

북일면 문암리 금곡 마을에 있는 영화·민속촌은 이제 지방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50 ∼60년대의 마을 경관을 그대로 간직한 토종마을 분위기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다.

[7-10] 금곡마을 양화,민속촌 [7-10] 금곡마을 양화,민속촌

마을 어귀의 울창한 당산나무로 시작해 고샅길 너머 싸리나무 담장에 초가집, 다랑이 논, 황소를 이용한 재래식 영농법, 동네 어귀에서 만난 주름진 할머니의 표정까지 모두 박물관에서나 만날법한 순 토종이다.
이 평화롭고 한적한 마을이 최근 유명세를 타고 있다. 남면이 고향인 임권택 감독이 이 마을을 배경으로 영화 '태백산맥'(1994년 제작)과 이영재 감독의 '내 마음의 풍금'(1998년 제작) 이외에도 김수용 감독의 '침향'을 비롯하여 MBC TV 드라마 '왕초' 등이 이 곳에서 촬영되었기 때문이다.

또 화가 황순칠이 이 마을을 주제로 한 작품 '고인돌 마을'로 지난 1995년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대통령상의 영예를 안았다. 실제로 마을 건너 들판에 여기저기 고인들이 놓여있어 마을의 유래가 깊음을 말해주고 있다.
군에서는 바로 인접해 있는 국내 최대의 삼림욕장인 축령산 휴양림과 연계하여 지난 1995년부터 전통 초가집 건립, 전선주의 지중화 사업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영화·민속촌으로 가꾸고 있다.

8. 북이면의 관광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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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방장산(742.8m)

고려사 '악지'에 전하는 백제가요 다섯 편중에 '방등산가(方等山歌)'가 있다. 도적 떼에게 잡힌 아낙네가 남편이 자기를 구하러 오지 않는다고 원망하는 내용만 전하고 가사는 전하지 않는데, 이 노래의 제목 방등산은 바로 방장산을 말한다. 방장산은 전북 고부의 두승산(영주산), 부안의 변산(봉래산)과 함께 소삼신산에 속하기도 한다.

호남정맥상 입암산에서 뻗어 나와 목포 유달산까지 영산강 서쪽에 분수령을 길게 뻗는 산줄기 중에서 가장 먼저 가장 높게 솟은 산이 방장산이다.

지금은 방장산을 가로지르는 양고살재까지 도로가 확·포장되고, 서부지방 산림관리청에서 조성한 1일 최대 500명, 최적 300명 규모의 콘도식 통나무로 지은 숙박시설이 마련된 방장산 자연휴양림이 들어서서 깊은 계곡과 맑은 물을 갈망하는 도시인들을 유혹하고 있으며, 바로 인근에는 고창 석정온천이 자리잡고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다.

위치적으로 전북 고창읍과 북이면이 경계를 이루는 산이니 만큼, 넓은 고창과 정읍 들판을 바라보며 능선을 타고 남해안까지 이어지는 부드러운 남도의 선 굵은 산세를 감상하며 등반할 수 있다. 맑은 날에는 방장산 정상에서 육안으로도 푸른 서해바다를 바라보는 재미도 맛 볼 수 있다.

주요 등산로

북이면 죽청리 양고살재 ∼ 암자 ∼ 방장산 정상 ∼ 쓰리봉 ∼ 북이면 원덕리 갈재(총 12km, 6시간 소요)

(2)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원덕리 미륵석불

북이면 원덕리에는 1972. 1. 29. 지방유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된 원덕리 미륵석불이 잔잔한 미소를 간직한 채 찾는 이들을 반기고 있다.이 석불의 높이는 5m에 이르며 길쭉한 사각형 돌 두 개를 명치께에서 이어 붙여 몸 전체를 이루고 있으며, 전체적인 형상은 장승과 같은 토속적인 수호신에 가깝다. 이 불상이 있는 곳이 정읍에서 남하하는 갈재 남쪽 계곡의 수구에 해당하므로 장성의 북쪽에서 악귀를 막던 비보장승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3) 국도 1호선 전남의 관문 장성 갈재

노령산맥의 주봉을 이루는 입암산과 방장산 사이에 있는 갈재(274m)는 장성군과 전라남도의 최북단에 있는 고개로, 호남고속도로와 호남선 철도, 국도 1호선이 모두 갈재를 지나가고 있어 전남·북을 잇는 중요한 교통로이자, 전략적 요충지이다. 노령산맥의 이름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갈재는 전라남도 사람들이 서울을 왕래할 때에는 어김없이 지나가는 길목으로, 옛날에는 고갯길이 아주 험해서 대낮에도 도적들이 출몰하므로 군보를 설치하고 보방수를 두어야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갈재를 넘다보면 남쪽과 북쪽의 기후가 사뭇 달라 정말로 전남 땅에 들어섰다는 실감을 하게 된다. 정읍에서는 활짝 갠 날씨가 갈재를 넘어 장성 땅에 이르면 소나기로 변해 쏟아지고, 한 겨울에는 눈발이 흑백을 구분하듯 뚜렷이 달라 지형에 의한 천지조화에 숙연해지기도 한다.
요즈음에도 큰 눈이라도 올라치면 호남고속도로 호남터널을 통행하는 자동차들의 긴 행렬이 장성 못재까지 이어지는 상습적인 정체구간으로 알려져 있을 만큼 험한 곳이다.

(4) 미인의 슬픈 사연을 간직한 갈이 바위

북이면 원덕리 원덕 저수지를 조금 지나면 우측에 눈, 코, 입이 확연한 미인의 모습을 갖춘 바위 봉우리가 있는데, 조선 초기까지는 처용암 또는 미인암이라고 불렀으나 조선시대 전기에 이 곳에 살았던 천하일색 갈이라는 기생의 애틋한 사랑의 전설로 인해 갈이 바위로 지명이 바뀌었다고 한다.

(5) 신분 고하를 불문하고 나라를 구한 장성 남문 창의비와 오산 창의사 및 삼일사

북이면 사거리 북이면사무소 뒤편에 1985. 2. 25. 지방유형문화재 제120호로 지정된 장성 남문 창의비가 있다.
남문 창의는 국난을 당하여 장성 선비의 기개를 높이 보여준 사건으로 '호남 절의록'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호남 의병에 삼운사(三運使)가 있었으니, 나주의 건제 김천일 장군이 일운사요, 광주의 제봉 고경명 장군이 이운사요, 장성의 남문 창의가 삼운사라 했다.

남문 창의는 북일면 출신인 오천 김경수(1543∼1621년)를 중심으로 3차에 걸쳐 일어났는데, 장성 남문에서 창의하여 순국한 의병들의 공적을 추모하기 위해 순조 2년(1802년) 현재의 위치에 창의비각을 건립하였다.
전면에 '호남오산남문창의비'라 쓰인 이 비에는 의병에 참가한 주요인물 77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여기에는 사노와 천민의 이름도 3명이나 기록되어 있다. 남문 창의는 타 지방의 의병 봉기와는 다른 몇 가지 특색이 있는데, 이는 한 명의 의병장 아래 봉기한 것이 아니라, 의병이 봉기한 후 그들 스스로 의병장을 선출하였다는 점과 의병, 관군, 승려들이 합세하였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사노와 천민도 포함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북이면 모현리에 있는 오산 창의사는 정조 18년(1794년) 호남 유림들의 상소로 남문창의에 참여하여 순국한 의사들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어 72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곳이다. 당시 남문의 위치는 현재의 북일면 오산리 신흥 역 부근으로 전해지며, 신흥 역을 마주 보고 있는 마을이 바로 남문 창의의 주역 중의 한 분이신 오천 김경수 선생의 마을이다.

또 오산 창의사 바로 인근에는 3·1 독립만세 운동의 불길이 전국으로 확산되어 갈 무렵인 4. 3. 북이면 모현리 주민 2∼300백여 명이 만세 시위를 했는데, 사거리 주재소 헌병들이 주동자를 체포해 가자 이튿날 다시 200여 명이 사거리 주재소에 나가 다시 시위를 벌이다가 10여 명의 주동자가 끌려가 옥고를 치렀다. 그 때의 3·1 만세운동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1990년 현 위치에 삼일사를 세우고 13인의 위폐를 모시고 있다.

9. 북하면의 관광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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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암산(741.2m)

백암산은 전라북도 정읍의 내장산과 함께 내장산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백암산의 봄과 가을은 노산 이은상 시인의 싯구에 '백암산 황매화야 보는 이 없어/ 저 혼자 피고 진들 어떠하리만/ 학바위 기묘한 경 보지 않고서/ 조화의 솜씰랑은 아는 체 마라'라는 내용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호남의 어느 산보다 으뜸으로 진녹색의 물감을 풀어놓았다 어느새 오색으로 갈아입은 듯한 백암산의 변신에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게 한다.

흔히들 단풍은 내장사 단풍을 으뜸으로 쳐서 '봄 백양사, 가을 내장사'라고 하지만 다섯 가지 빛깔로 곱게 물든 오색단풍과 초록색으로 펼쳐진 비자나무 숲이 함께 어우러진 백양사의 가을 경치는 보는 이의 감탄을 절로 자아낸다.

산행코스도 다양해 개인의 체력 정도와 소요시간 등에 따라 선택의 폭도 넓다. 산행 이외에도 고불총림 백양사 입구에서 내장사로 가는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온 산이 붉게 타는 듯한 오색단풍이 장관을 이루고 있어 드라이브 코스로도 아주 적합하다.

주요 등산로

제1코스 : 주차장 ∼ 백양사 ∼ 약사암 ∼ 영천굴 ∼ 백학봉 ∼ 도집봉 ∼ 상왕봉 ∼ 운문암 ∼ 백양사(총 9.3km, 5시간 소요)
제2코스 : 주차장 ∼ 백양사 ∼ 운문암 ∼ 능선 갈림길 ∼ 사자봉 ∼ 청류암∼ 홍련암 ∼ 가인마을 ∼ 주차장(총 8km, 4시간 30분 소요)
제3코스(백양사와 내장산 연결) : 백양사 ∼ 약사암 ∼ 백학봉 ∼ 구암사 ∼대가마을 ∼ 내장산 신선봉 ∼ 금선계곡 ∼ 내장사(총 18km, 9시간 소요)
제4코스(백양사와 남창골 연결) : 백양사 ∼ 운문암 ∼ 능선 갈림길 ∼ 몽계폭포 ∼ 전남대학교 수련원(총 7.2km, 3시간 30분 소요)

(2) 흰 양이 설법을 듣고 환생했다는 고불총림 백양사

북하면 약수리에는 천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고불총림 백양사가 자리잡고 있다. 노령산맥의 동남맥인 백암산 가인봉과 백학봉 사이 골짜기에 자리잡은 백양사는 백제 무왕 33년(632년) 여환조사가 창건하여 처음에는 백암사로 불리다가 고려 덕종 3년(1032년) 중연선사가 중창한 후 정토사라 불리어졌고, 조선 선조 7년(1574년) 이후 현재의 이름인 백양사로 불리어졌다.

[사진 7-11]고불총림 백양사 [사진 7-11]고불총림 백양사

그런데 백양사라는 이름에 대해 전하는 이야기가 있다. 조선 선조 때 환양선사가 영천암에서 금강경을 설법하는데, 흰 양이 내려와 스님의 설법을 들었다고 하며, 그 때부터 백양사로 고쳐 불렸다고 한다.
고불총림 백양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18교구 본산으로 각진국사를 비롯하여 만암 대종사 등 많은 불교지도자를 배출하였고, 1996. 3. 31. 고불총림으로 승격되어 조계종 5대 종정을 지내신 이서옹 큰스님이 방장으로 주석하고 있다.

백양사는 그 오랜 연원과 함께 경내에 수많은 문화유산들을 간직하고 있다. 깍아지른 듯한 학바위를 배경으로 단아하게 서 있는 대웅전(백양사는 정토종의 사찰이기 때문에 극락보전이 본당임. 1974. 9. 24. 지방유형문화재 제43호로 지정)은 1917년 만암 대종사가 중건할 때 새로 건립한 건물로 내부에는 석가여래 삼존불과 1979년에 새로 모신 10척 높이의 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백양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의 하나인 극락보전(1972. 8. 7. 지방유형문화재 제32호로 지정)을 비롯하여 사천왕문(1974. 9. 24. 지방유형문화재 제44호로 지정), 소요대사 부도(1974. 12. 26. 지방유형문화재 제56호로 지정), 청류암의 관음전(1990. 2. 24. 지방문화재자료 제179호로 지정) 그리고 천연기념물 제153호인 비자림 등 각종 문화재가 산재되어 있다.

특히 백양사는 원래 암자가 유명하여 12개 암자가 있었으나 현재는 운문암, 영천암, 청류암, 천진암, 약사암, 물외암, 금강암, 홍련암 8개 암자가 남아 있고 묘련암, 백련암, 지장암, 청량암은 소실되어 현재 빈터만 남아 있다.

1) 쌍계루

쌍계루의 아름다운 풍광에 취한 고려 말 대학자인 목은 이색은 '두 시내가 합류하는 곳에 누각이 있어 왼쪽 물에 걸터앉아 오른쪽 물을 굽어보니 누각의 그림자와 물빛이 위 아래로 서로 비치어 참으로 좋은 경치였다'고 찬탄했다고 한다.

[사진 7-12] 쌍계루 [사진 7-12] 쌍계루

2) 학바위

백암산이라는 이름이 이 바위에서 비롯한다. 학이 날개를 펴고 있는 형국이라 해서 학바위라고 한다. 육당 최남선은 '학바위에는 흰 맛, 날카로운 맛, 맑은 맛, 신령스러운 맛이 있다'고 하였으며, 계절에 따라 그 색이 변한다.

3) 백양 12경

쌍계루, 운문암, 영천암, 약사암, 감로천, 대웅전, 비자림, 비림, 용수탕, 천진암, 청류암, 봉황대의 뛰어난 절경을 두고 이른 말이다.

4) 영천굴

학바위 중턱에 있는 천연 굴인데, 환양선사가 이 곳에서 설법을 할 때 흰 양이 찾아 들었다고 하여 백양사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전설이 있고, 이 굴 안의 바위틈에서 쌀이 나왔는데 더 많이 나오게 하려고 부지깽이로 바위구멍을 넓히자 쌀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약수가 나왔다는 전설도 내려오고 있다.

5) 천연기념물 백양사 비자나무숲

비자나무는 난대성 상록 침엽 교목으로 백양사를 중심으로 북방 한계선인 백암산 일대(300ha)에 군락을 이루며 약 5천여 주가 자생하고 있고, 1962. 12. 3. 천연기념물 제153호로 지정되었다. 열매는 구충제나 치질, 식용유, 고급가구의 칠기름, 감기약 등으로 사용하며, 여타지방의 비자나무는 씨눈이 한 개인 것에 비해, 백암산 비자나무는 씨눈이 두 개여서 양코백이 또는 두눈쟁이 비자나무로 불리기도 한다.

(3) 입암산(626.1m)

입암산은 호남정맥이 내장산을 지나 방장산으로 내리 뻗는 도중에 솟구친 산이다. 전라북도 정읍에서 장성 쪽으로 내려가다가 갈재 근처에서 왼쪽으로 보면 정상의 바위가 마치 초립을 쓴 것 같은 형상의 입암산이 뚜렷이 바라다 보인다.

입암산은 전남·북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전남 장성군 북하면과 전북 정읍시 입암면이 이 산줄기를 경계로 나누어진다. 내장산 국립공원에 포함되어 있으나, 내장산이나 백암산과는 달리 계곡이 깊고 수량도 풍부하여 남창골 입구에 있는 장성호 상류의 최대 수원이다. 여름철이면 입암산 산행의 들목이기도 한 남창계곡은 많은 피서객으로 항상 붐비고 있다.

산이 유순해 겨울 산행도 무난하다. 활엽수의 앙상한 나뭇가지에 탐스럽게 맺힌 하얀 눈꽃이 별천지를 이루며, 성안의 분지는 겨울의 칼바람을 막아주어 온화한 느낌을 준다. 깊은 계곡의 맑은 물과 시원한 수림은 여름철 방문객을 반갑게 맞아준다. 성곽을 따라 비스듬히 올라가는 갓바위 길은 마치 중국의 만리장성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주요 등산로

제1코스 : 전남대학교 수련원 ∼ 계곡 갈림길 ∼ 입암산성 남문 ∼ 북문 ∼ 갓바위 ∼ 전남대학교 수련원(총 8km, 3시간 20분 소요)
제2코스 : 전남대학교 수련원 ∼ 입암산성 북문 ∼ 노령역(총 6km, 2시간 30분 소요)
제3코스 : 전남대학교 수련원 ∼ 몽계폭포 ∼ 백암산 상왕봉 ∼ 소죽엄재 ∼내장산 까치봉 ∼ 내장사(총 16km, 8시간 소요)

1) 남창계곡

입암산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 남창계곡은 산성골, 은선동 계곡, 반석동 계곡, 하곡동 계곡, 자하동 계곡, 내인골 등 여섯 갈래로 이루어져 있어 그 길이가 십여 리에 이른다.계곡 곳곳에는 크고 작은 폭포와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마치 선계에 들어선 듯한 경치와 함께 온갖 새소리가 그침이 없는 울창한 수목과 산천어의 작은 몸놀림까지 들여다 보이는 맑은 물과 계곡을 따라 지루하지 않게 이어지는 오솔길은 남창계곡이 자랑하는 가장 빼어난 멋이라 할 수 있다.

2) 입암산성

입암산성은 전라남도 최북단의 입암산 정상에 있는 포곡식 석성이다. 해발 687m로 노령산맥의 중간지점이자 전남·북의 경계지역에 위치하고 있고, 호남고속도로, 호남선 철도, 국도 1호선이 모두 입암산 서단의 갈재 협곡을 통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서해안과도 가까운 산악지대여서 이 곳은 예로부터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다.

1993. 11. 10. 국가사적 제384호로 지정된 입암산성은 해발 550∼560m의 산 능선을 따라 축조된 포곡식 산성으로, 잔존하고 있는 성곽의 흔적은 5,208m이나 대부분 붕괴되어 있다.
기록에서 보듯이 입암산성은 몽고병란 때의 격전지였는데, 이 때 송군비 장군이 입암산성으로 들어간 것은 이미 그 이전에 성의 형태가 있었기 때문으로 추측되며, 따라서 입암산성을 처음 쌓은 것은 삼한 시대나 후백제 시대가 아닌가하고 추정하고 있다.
몽고병란 이후 방치되고 있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다시 중요한 요새가 되었다. 장성읍지에 의하면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 해인 선조 26년(1593년)에 장성현감 이귀가 현인(縣人)윤진과 더불어 개축했으며, 정유재란(1597년) 때 왜병들이 남하하는 것을 당시 산성 별장이었던 윤진 장군이 관군, 의병, 승병 등을 지휘하여 싸우다가 장렬히 순절하였다.

입암산성이 언제 폐쇄되고 그 시설과 건물이 언제 없어졌는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다만 동학란 때 전봉준 장군이 몸을 피해 순창으로 향하던 중 당시 산성별장이던 이종록과 친분이 있어 하룻밤을 묵어 갔는데, 이 일로 해서 별장이 처벌을 받았으며 그 후에 별장을 없었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남문루는 일제 중엽까지 있었다고 한다.

한때 성내에는 30여 호 115인이 살았으며, 1986년까지 2∼3호가 살았으나 현재는 초가집 한 채만 허물어진 채 남아 있고, 이 곳에 있는 윤진 장군(1548∼1597년)의 순의비가 지금까지 전한다.

[사진 7-13] 입암산성 [사진 7-13] 입암산성

3) 몽계폭포

입암산성 입구 동쪽 계곡에 몽계폭포가 있다. 폭포 앞 바위에 磎瀑布(몽계폭포)'라는 각자가 있고, 조금 아래 바위 벼랑에 '霞谷石門(하곡석문)'이란 각자가 새겨져 있는데 하곡 정운룡 선생이 새겼다고 하며 이 계곡 입구에 하곡 선생이 은거했다는 정자 터가 있으며, 이 계곡 일대의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사진 7-14] 몽계폭포 [사진 7-14] 몽계폭포

성읍에서 국도 1호선을 따라 북쪽으로 가면 장성읍과 북하면 경계인 구신재를 지나면 오른 쪽으로 담양군 대전면으로 이어지는 지방도 898호선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좌측으로 1999년에 완공한 홍길동 우드랜드와 3km 정도 더 들어가면 맑은 계곡과 울창한 숲의 월성 계곡을 만나게 된다.
월성 계곡은 260ha에 조성된 편백·삼·소나무 등 울창한 숲과 깊은 골을 따라 형성된 맑은 계곡 때문에 여름철 조용한 휴식을 즐기려는 가족단위 피서객들이 즐겨찾는 곳이다.

특히 계곡 아래에는 강태공들이 즐겨찾는 월성 저수지가 있고, 장성군과 담양군의 경계인 한재 정상에서 능선을 따라 병풍산까지 연결된 5km의 등산로(2시간 소요)는 장성과 담양의 아름다운 들녘을 한 눈에 바라보며 산행할 수 있다.

그리고 홍길동 우드랜드는 10ha의 군유림에 임도, 산책로를 비롯하여 무한궤도 외 13종의 각종 탐험놀이 시설과 자연학습장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어 어린이와 함께 하는 캠프나 가족 또는 계모임 등을 할 수 있는 휴양시설을 모두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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