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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메뉴 정의

마을유래

약수리(藥水里)
약수리는 면소재지이며 약수ㆍ학림ㆍ화룡ㆍ가인 마을로 구성되었다. 약수에 지석묘가 있고 백제사찰인 백양사가 있는 점으로 보아 오랜 옛날부터 마을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호구총수(1789년)에 약수ㆍ학림ㆍ가인ㆍ손마ㆍ입석이 기록되어 있다. 백양골에는 괴비동(고비, 高飛)ㆍ동구(洞口)ㆍ서당골ㆍ탑쟁이ㆍ북당골 등의 마을이 있었는데 200년이 못된 마을이었던 것 같으며 이 마을들은 6ㆍ25때 소각ㆍ독립가옥 철거ㆍ국립공원 개발 등으로 없어지고 가인만 남아 있다.
중평리(中坪里)
중평리는 중평, 강선, 용산 세마을로 이루어졌다. 중평은 면중심지에 위치한 면내에서 가장 큰 북하면의 대표적 마을이다. 강선과 용산은 중평에서 북으로 3~5Km 거리에 위치한데다 큰재가 가로막고 있어 오히려 전북 순창과의 접촉이 더욱 빈번하다. 중평리는 원래 중평, 회촌, 곤분, 강선, 용산마을로 이루어졌는데 곤분이와 회촌은 대부분 없어지고 회촌일부가 중평에 폐합되어 3개 마을이 남아있다. 현재 중평리에는 중평의 남양방씨와 울산김씨, 강선의 남원양씨, 용산의 풍천노씨와 江陵劉氏가 가장 오래 거주하고 있으며 중평에 河西 김인후 부조묘와 晦溪祠址, 강선에 지석묘가 남아있다.
성암리(星岩里)
성암리는 성암ㆍ명치ㆍ용동 3개 마을이다. 호구총수(1789년)에는 광암(廣岩)ㆍ우암(牛岩)ㆍ세곡(細谷)이 나오는데 광암은 알 수 없고 우암은 성암이며 세곡은 용동이다. 명치는 200년이 못된 마을인 것 같으며 명치동에 속한 도장동이 있었으나 6ㆍ25때 소각된후 복구되지 못하고 말았다.
대흥리(大興里)
대흥리는 면의 동쪽 대흥ㆍ갈마ㆍ대정 3개 마을로 이루어졌다. 호구총수(1789년)에는 갈마리ㆍ대정곡ㆍ적암(赤岩)이 기록되어 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적암은 담양군 홍암리에 합쳐지고 당시 담양군에 속했던 천변리 일부가 대흥마을로 합병되었다.
월성리(月城里)
면의 최남단 월성ㆍ연동으로 이루어졌다. 호구총수에는 월성과 판교촌(板橋村)으로 나온다. 연동(판교촌)은 원래 창평현에 속하였으나 1909년 장성군에 편입 되었으며 판촌ㆍ너드리 등으로 부르다가 1965년 연동으로 바뀌었다.
대악리
대악은 대악, 풍기, 대방, 장사 4마을로 이루어졌다.
대악은 면소재지에서 남쪽으로 8Km에 있는 해발 150m의 서향마을로 손룡골의 중심지에 위치하고 풍기는 면소재지에서 남쪽으로 7Km에 있는 해발 150m의 서향마을로 마을 뒷산(대손룡)을 넘으면 신촌마을 안골이 나오는데 수많은 지관(풍관)들이 찾아드는 곳이다.
대방은 면소재지에서 남쪽으로 6Km, 해발 140~150m의 산기슭마을로 국도1호선에서 서쪽으로 100m쯤떨어져 있고 장사는 면소재지에서 남쪽 6Km에 있는 동향마을로 거미노리(불다산)에서 한후리로 뻗어가는 능선의 동쪽기슭 해발 135m에 자리잡고 있다.
단전리(丹田里)
단전리는 단전, 신촌 2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졌다.
단전리는 원래 단전, 신촌 汗厚里 3개 마을이었으나 행정적으로 汗厚里는 신촌에 예속되었다 없어졌다.
단전마을에는 도강김씨가 임진란 직후에 들어와 현재까지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단전마을에서는 매년 정월보름날 저녁에 마을의 평안과 복을 비는 당산제를 지내며 신촌마을에 시온산기도원과 신촌교회가 있다
용두리(龍頭里)
용두리는 용두ㆍ하만ㆍ궐전마을로 이루어졌다. 호구총수(1789년)에는 함안ㆍ용강ㆍ용두ㆍ궐전이 나오며 1914년 이 3마을을 합쳐 용두리라 하였다.
덕재리(德在里)
덕재리는 원래 북상면이었으며 원동ㆍ덕재ㆍ신광ㆍ남바우ㆍ명시내 5개 마을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장성호에 모두 수몰되고 지대가 높은 원동만 남았으며 1975년 북하면에 편입되었다. 장성호에 잠겨버린 동현리 원동ㆍ남바위 일대에 지석묘군이 분포되어 있었던 점으로 보아 이 일대에 선사시대 집단 거주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호구총수(1789)에는 상덕치ㆍ중덕치ㆍ신덕치ㆍ덕신ㆍ부귀리ㆍ명시내리가 나오는데 상덕치ㆍ중덕치ㆍ신덕치를 합하여 「덕재」라 하였으며 면사무소가 덕재에 있다가 후에 도로변에 새로 생긴 「신광」으로 옮겼다.
쌍웅리(ㆍ熊里)
쌍웅리는 원래 북상면으로 상목동ㆍ화룡리ㆍ중웅리ㆍ하웅리ㆍ구웅치리가 있었는데 송정이 새로 생겨 상목동 보다 커졌으며 중웅리는 회룡에 구웅치리는 하웅에 합해지고 사점리(沙店里)에도 인가가 있었다. 1975년 장성호의 건립으로 사점리와 회룡(중웅리)이 수몰되고 송정ㆍ상목동ㆍ남바위(덕신)ㆍ하웅ㆍ사점리 일부가 남아 북하면으로 편입되었다.
신성리(新城里)
신성리는 신웅과 남창마을로 이루어졌다.
전북과 경계를 이루는 입암산의 남쪽 계곡인 남창골은 은선동계곡, 산성계곡, 세재계곡, 몽계폭포 계곡, 자장동계곡, 內仁골 등 6대 계곡으로 이루어졌다.
이 계곡에서는 원래 10여개의 마을이었으나 차츰 없어져 지금은 행정상 2개 마을로 통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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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0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