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희망이 있는 옐로우시티 장성

북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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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메뉴 정의

마을유래

사거리(四街里)
북이면 소재지 마을로 옛날에는 복암리(福岩里)라 불렀으며 웃네거리와 아넷네거리로 나뉘어 있다. 구.보건소 앞 언덕에 지석묘가 있고 우황수쪽 철도변에 고려 때 것으로 보이는 석당간(石幢竿)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랜 옛날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 같다. 1789년 발간된 (호구총수)에 「복암리(伏岩里)」로 나와 있으며 1912년 행정구역명칭에 「복암리(福岩里)」로 나온다. 구한말 때까지 면사무소 앞 언덕에 집 몇 채와 꿀등재 삼거리에 주막집 몇 호가 있었는데 1914년 철도가 개통되고 국도와 담양·고창선이 개설되면서 교통의 요충지가 되었으며 관공서가 들어서고 시장(1919년)이 생기면서 호수가 크게 늘어나고 마을이름도 네거리(四街里)로 부르게 되었다. 일제중기에 110호(남부 60ㆍ북부 50) 정도 살았으며 광복 전후에는 300여호(남부 130ㆍ북부 170)였는데 현재는 400여 호가 살고 있다. 일제초기에 진주강씨가 들어왔는데 그 전에 김해김씨가 들어온 것 같다. 역 앞의 독립탑, 장터부근에 남문창의 비각, 철도변에 석당간, 장터에 이공진 공적비, 노인당에 신태호 시혜비, 공원 산 밑에 전일귀 효자비 등이 있다. 인물 : 김성수(경기도청 정무부지사)ㆍ유중은(육군준장, 101여단장)ㆍ손창완(치안정감, 제35대 경찰대학장)ㆍ김병조(개그맨, 교육인)ㆍ변희봉(탤런트, 영화배우)
원덕리(院德里)
원덕리는 면의 북쪽에 위치한 원덕과 목란으로 이루어졌으며 전남북 갈재계곡에 자리잡고 있어 옛부터 노령산맥을 넘는 길목으로 국도, 철도, 고속도로가 모두 이곳을 통과한다. 호구총수(1789년)에는 「내시리(乃是里)」ㆍ「원덕리(院德里)」ㆍ「직도리(稷島里)」가 기록되어 있고, 1912년 기록에는 「목란리」ㆍ「원덕리」ㆍ「직도리」ㆍ「밀억리」가 나오며 그뒤 「새터」마을도 생기었으나 지금은 원덕과 목란 두 마을로 통합되었다.
신평리(新坪里)
신평리는 면소재지 서쪽 3개마을[신창(新昌)ㆍ신평(莘坪)ㆍ거마(巨馬)]로 이루어졌다. 호구총수(1789년간)에 거마산리만 기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신평과 신창은 200년이 못된 마을인 것 같다.
달성리(達城里)
달성리는 원래 달성(達城)ㆍ밀등(密登)ㆍ궁동(弓洞)ㆍ신월리(新月里)ㆍ명정(明丁)ㆍ산동(山東)ㆍ강머리 등의 마을이 있었는데 ㆍ강머리ㆍ는 달성저수지 건설시 수몰되고 ㆍ신월리ㆍ는 자연폐촌 되었으며 나머지 마을도 인구의 감소로 인하여 달성(밀등)ㆍ궁동(신월리)ㆍ명정(산동)으로 합병되었다. 호구총수 (1789년)에 ㆍ밀등ㆍ과 ㆍ신월리ㆍ만 나오며 그 외는 200년이 못된 마을인 것 같다.
죽청리(竹靑里)
죽청리는 전북 고창읍과 고개 하나 사이에 있으며 청운ㆍ중산ㆍ이동ㆍ죽청ㆍ금양 5개 마을로 이루어졌다. 금양마을 아래 길가에서 환상석부 언골에서 삼족토기가 발견되고 신라말의 도둑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보이며 호구총수(1789)에도 금양동ㆍ죽청리ㆍ고사치ㆍ생철점이 나와있다.
만무리(晩舞里)
만무리는 면의 서쪽에 위치한 부동ㆍ호산ㆍ만무ㆍ율정ㆍ상곡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만무 초등학교 앞 언덕에서 백제유물이 나오고 호구총수에도 여산(호산)ㆍ율정ㆍ만무ㆍ상곡ㆍ부동이 모두 기록되어 있다.
신월리(新月里)
면의 남쪽에 위치한 신월리는 신광ㆍ월하ㆍ상공ㆍ오동ㆍ홍산으로 이뤄졌다. 호구총수(1789년)에는 사전리ㆍ홍산리ㆍ마산리ㆍ방화산리ㆍ신광리가 나와 있는데 사전리(총거리들)는 없어지고 마산은 오동으로 바뀌고 상공은 새로 생겨났다.
모현리(茅峴里)
모현리는 원래 12동네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화동ㆍ북촌ㆍ모현ㆍ평촌 4개 마을로 이루어졌다. 호구총수(1789년)에는 화동촌ㆍ신동리(新洞里)ㆍ여촌(余村)ㆍ양지ㆍ평지ㆍ고동촌 6마을이 기록되어 있는데 신동리는 화동의 일부인 것 같고 여촌은 제촌(提村)으로 평지는 평촌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솔청뫼 밑에 있었던 양지는 없어졌다. 또 중리(中里)ㆍ서평리ㆍ꽃고개ㆍ실뫼ㆍ옥녀촌ㆍ안터 등에도 크고 작은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제촌은 모현에 고동촌은 평촌에 합쳐지고 양지촌ㆍ꽃고개ㆍ실뫼ㆍ서평리ㆍ옥녀촌ㆍ안터ㆍ중리는 없어졌다.
수성리(水城里)
면(面)의 동남쪽에 위치한 수성리는 원래 북상면이었는데 장성호 건설로 1975년 북이면에 합병되었다. 원래는 수성ㆍ성동ㆍ장평ㆍ수명ㆍ화산 5개마을이었으나 장성호 수몰로 인하여 수성(성동ㆍ장평)ㆍ수명(화산) 두 마을로 합쳐졌다. 호구총수(1789년)에는 ㆍ접부치리(화산)ㆍㆍㆍ어만리(수명)ㆍㆍㆍ성동리ㆍㆍㆍ검성리(수성)ㆍ가 기록되어 있다.
조양리(朝陽里)
면의 남동쪽에 있는 조양리는 원래 북상면이었으며 조양ㆍ내동ㆍ덕곡(정동)ㆍ동정(석암)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호구총수(1789년)에는 소지방리ㆍ대지방리(현조양부근)ㆍ덕곡리ㆍ광암리(현동정)ㆍ상봉리(상봉산 밑)ㆍ내동리가 기록되어 있으며 상봉리는 내역을 알 수 없다.
오월리(鰲月里)
면남동쪽에 위치한 오월리는 오현ㆍ월봉ㆍ송산(필동)으로 이루어 졌으며 원래 북상면에 속했는데 1975년 장성호 건설로 북상면이 없어지고 북이면으로 편입되었다. 호구총수(1789년)에 ㆍ송산리ㆍㆍㆍ성조동(오현)ㆍ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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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
  • 북이면 총무담당 심선아 ☎ 061-390-7943
갱신일자
2019. 05. 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