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인물홍길동

국내활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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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 테마파크

청년기 1460년(세조 6년)~1470년(성종 1년)

서얼의 관리등용을 금지하는 경국대전의 반포로 과거시험을 포기하고 집을 떠나 나주목 관할 장성현 갈재를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광주 무등산, 영암 월출산에 본거지를 정하고 주로 탐관오리와 토호의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일반 백성에게 나눠주는 의적 활빈 활동을 하였습니다. 또한 경상도 김천 황악산에 들어가 학조대사에게서 병법과 무술을 배웠습니다.

장년기 1471년(성종 2년)~1500년(연산군 6년)

관군에 쫓겨 1469년 11월 중순에 전라도 영광 다경포(현재의 법성포) 근처의 영평곶에서 배를 타고 나주 압해도(현재 신안군 압해면) 쪽으로 활동 근거지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1470년(성종 원년) 관군의 집요한 토벌작전을 피하기 위하여

가짜 홍길동을 내세워 체포당하게 하는 계략을 꾸민 홍길동 집단은 남서해안의 여러 섬을 중심으로 생업에 종사하며 평화스럽게 살았습니다.

1485년(성종 20년) 11월, 명예욕이 강했던 전라도 도사 한건이

홍길동을 폭도로 몰아 강경진압을 결행하고 관아에 끌고가 매질하여 죽이는 사태가 발생하자 홍길동 집단은 생업을 뒤로한 채 재무장 투쟁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1487년(성종 22년) 홍길동 집단은

생계유지를 위해 어민들이 주로 이용하던 거도선(바닥이 평평하고 근거리 이동에 용이함) 이용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1489년(성종 24년)

해상 통행증 발급 - 홍길동 집단을 색출하기 위해 바다를 왕래하는 사람을 상대로 통행증을 발급하여 활동을 원천적으로 봉쇄하였습니다.

1490년(성종 25년)

관군의 해상 봉쇄 작전으로 고립에 빠진 홍길동 집단은 2개조로 나누어 전라도 남해안 광양현(현재의 순천 광양만)으로 상륙을 단행했습니다.

1495년(연산군 24년)

충청도 조령, 문경새재를 주요 활동지로 홍주와 공주를 생활 근거지로 삼아 충청도 전역으로 세력을 넓혔습니다. 특히 공주 무성산 정상(614m)에 요새를 쌓고 관군에 대항하며 집단생활을 영위하였으며, 이 시기에는 염귀손 등 조정의 고위직 관리는 물론 지방의 수령, 아전, 유향소의 품관들까지 이들의 활동을 동조하였습니다.

1500년(연산군 6년) 10월 22일

홍길동 집단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체포되는 형식으로 자수하였는데, 강상죄(관직을 사칭한 죄)로 충청도에서 서울로 압송, 의금부에 갇혔습니다.

1500년(연산군 6년) 11월

남해 삼천리 유배형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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