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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대학 졸업 후 자신감 ‘쑥쑥’ 농사에 애착 생겨

2016-01-07조회수 : 1756
농업대학 졸업 후 자신감 ‘쑥쑥’ 농사에 애착 생겨 이미지 1
농업대학 졸업 후 자신감 ‘쑥쑥’ 농사에 애착 생겨
귀농 이후 우울증 경험도,현지 주민들과의 네트워크 형성 중요

노선희
귀농한 해 : 2005년
재배작물 : 야생화

노선희씨에게 귀농은 선택이 아닌 주어진 운명이었고, ‘당연히 해야할 일’이었다. 경기도 용인에 거주했던 노선희씨는 70여 년 전 시아버지께서 손수 지으신 집, 그리고 고향 땅을 지키기 위해 지난 2005년 남편의 본적지인 장성 황룡면에 왔다.
시아버지께서 살아계셨을 적에 이 일대 농가들은 뽕잎나무를 주로 길렀었다. 그러다 시아버지가 일본에서 배나무를 들여와 주민들이 함께 배 농사를 지었고, 소득이 껑충 뛰었다. 동네 사람들은 마을의 소득 증대에 기여한 노씨의 시아버지에게 공덕비를 세워줬다. 시아버지와의 인연이 남다른 마을, 노선희씨 부부가 이 곳에 정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도시에서 생활하면서도 줄곧 ‘남편이 퇴직하기 전에 시골에서 야생화로 가득한 정원을 꾸며 꽃을 돌보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10여 년 전부터 꽃들을 사 모아 지금은 100여종이 넘는 야생화 화분 200여개가 농장을 수놓고 있다.
“귀농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현지에 적응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민들에 비해 농사에 관련된 정보도 늦고, 또 노동력을 구하기도 무척 힘들었습니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귀농 이후 3년 가까이 우울증에 시달렸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귀농생활이었지만, 친인척은 물론 이 곳에 친구도, 대화상대 한 명 없다는 현실을 극복하기 힘들었다. 도시에 살면서 익숙했던 문화생활을 접할 길도 없었다. 농촌은 늘 분주했고, ‘나만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욕은 넘쳐났지만, 작물을 기르는 것도 결코 쉽지 않았다. 도망치듯 시골을 빠져나와 친정 식구들이 있는 외국으로 향했다. 그러나 몸은 떠나 있어도, 머리 속에는 농장 생각이 맴돌았다.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고야 말았다.
노씨는 “우울증을 극복했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힘들긴 하다. 주위 이웃들은 ‘야생화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겠냐’며 우려 섞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생각이 달랐다. 분명, 야생화도 잘만 키우면 충분히 돈이 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노선희씨는 전남미래농업대학에서 수업을 들으며 점차 시골 생활에, 농사일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 귀농 이후 가장 보람을 느낀 것, 가장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일은 미래농업대학에 입학해 열심히 공부하고, 졸업까지 하게 된 것이다.
노씨는 점차 농장에, 귀농 생활에 빠져들고 있다. 죽어가는 감나무를 파내고, 그 곳에 다른 과수를 심을 계획이어서 매우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넒은 전답 위에 조경수와 야생화를 많이 키워 아름다운 정원을 꾸미는 것입니다.
그는 예비귀농인에게 “농업기술센터 등 귀농·귀촌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곳에서 미리 충분히 교육을 받고, 관심 분야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이고 정확한 지식을 습득한 뒤에 귀농하라고 말해주고 싶다”며 “특히 중요한 것은 현지 주민들과의 소통이다. 동네 주민들과의 모임 자리에도 잘 참석해 두터운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좋다”고 제안했다.


- 2013년 사례집 [나는 장성에서 행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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