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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이후 삶에서 활기 되찾았다

2016-01-07조회수 : 891
귀농 이후 삶에서 활기 되찾았다 이미지 1
귀농 이후 삶에서 활기 되찾았다
오로지 농사일 목맬 것 아니라 여가도 즐기기를

이름 : 윤혜영
귀농한 해 : 2012년
재배 작물 : 장미

도시에서 나고 자라 흙 한 번 제대로 밟아볼 기회 없이 살았다. 호미 같은 농기구 한 번 잡아본 적도 없다. 윤혜영씨는 오히려 농사에 대해 아는 것 하나 없었기에 과감히 농촌 생활을 결정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서울토박이인 그가 장성에 내려온 것은 지난해의 일이다. 남편이 퇴직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부부가 함께 내려오면 경제적인 어려움에 맞닥뜨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윤씨 먼저 귀농 길에 올랐다. 장성은 타지에 비해 교통이 편리하고, 특히 진원면의 경우 광주와 가까워 도시 생활이 몸에 배어있는 윤씨에게 적절한 곳이었다.
윤씨는 귀농을 결정하고, 광주에서 장미농장을 운영하는 멘토를 소개받았다. 서울이나 충청도 등 장미농장을 찾아다니며 작물에 대한 공부도 했다.
“책이나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그대로 제 농장에서 실행에 옮겨보고 있어요. 같은 작물이라도 어떤 재배 방법이 최선인지는 다 제각기 주장하는 바가 다르죠. 그래서 저는 배운 것들을 실천해 보되, 장미 하우스 내에 한 고랑을 저만의 실습실이다 생각하고 재배 방법, 퇴비 등을 다방면으로 시도하고 있습니다.”
생전 처음 겪는 시골생활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윤혜영씨는 “일가친척은 물론 친구도, 하다못해 말 한번 건넬 상대도 없었다. 게다가 이곳 지리에 어두워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이곳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겠단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도시-시골 간 생활패턴의 차이도 그를 힘들게 했다. 서울에서는 큰 돈을 들이지 않아도 즐길 거리가 다양했다. 지인들과 봉사활동을 다니거나 사진촬영 등 문화생활을 하며 충분히 여가를 즐길 수 있었다.
막상 귀농을 하니 문화생활 한 번 즐기기 힘들었다. 윤씨의 눈에 농민들은 오로지 일에 얽매여 사는 이들처럼 보였다.
“저는 일만 하려고 귀농한 게 아니에요. 노후도 즐기고 싶어요. 그래서 저는 농장 출·퇴근 시간은 물론 점심시간도 칼같이 지켜 작업이 끝나거나, 주말이면 광주 근교에서 문화생활을 누립니다.”
윤혜영씨는 귀농 과정에서 멘토로부터 작물에 대한 교육을 잘 받았던 것이 큰 도움이 됐단다. 그는 현재 장성군농업기술센터와 전남과학대에서 공부하며 작물에 대한 이해를 높여가고 있다.
도시생활에 비해 귀농한 이후에 생활에 활력이 더해졌다. 노후,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졌다. 지금 그는 ‘열심히 농사를 지으면 댓가를 충분히 거둘 수 있다’는 자신감에 가득차있다.
윤씨는 “내가 기른 장미가 다른 이들의 작물에 비해 품질이 좋은 것을 스스로 느낄 때 보람을 느낀다”며 “그날 경매에서 장미가 후한 값을 받던지 그렇지 못하던지 간에 내 작물에 대해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고 어깨가 펴진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예비귀농인들에게 “제대로 된 멘토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멘토가 알려주는 그대로 작물을 꼭 키워봐야한다. 귀농인들이 작물이나 땅의 습성에 대한 이해가 완전히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 개성대로 작물을 기르다가 실패한 경우를 봤다”고 조언했다.
또한 섣불리 귀농을 선택하지 말고 충분한 여유자금을 가지고 귀농·귀촌을 고려할 것을 당부했다.


- 2013년 사례집 [나는 장성에서 행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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