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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일면

마을유래

신흥리(新興里)
신흥리는 남부ㆍ북부ㆍ강정ㆍ만세ㆍ갑동ㆍ신흥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신흥이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인 것 같으며 호구총수(1789년)에는 신흥리와 강정리만 기록되어 있다.
박산리(泊山里)
박산리는 박산ㆍ작동ㆍ오복촌 3개 마을로 이루어졌다. 1912년 행정구역명칭에 원동ㆍ작동ㆍ주산ㆍ오복 마을이 나오는데 원동은 작동의 일부이고 주산은 박산인 것 같다. 고려때부터 마을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오는데 1789년의 (호구총수)에는 4개마을이 모두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을 보면 마을이 없어졌다가 다시 생겨난 것 같다. 1914년 오복ㆍ작동ㆍ원동ㆍ창암리 일부지역을 박산리에 편성했다.
오산리(鰲山里)
오산리는 북창ㆍ양막ㆍ학교촌ㆍ죽남ㆍ교촌ㆍ용연 등 6개 마을로 이루어졌으며 옛 장성현의 소재지이다. 1789년의 (호구총수)에는 상당리ㆍ창촌ㆍ도생리ㆍ교촌이 기록되어 있는데 상당리는 현재의 죽남과 양막이며 도생리는 6ㆍ25때 없어졌다. 1912년의 (행정구역명칭)에는 용연리ㆍ죽남리ㆍ개천리ㆍ송남리ㆍ오서리ㆍ담정리ㆍ창촌리ㆍ창암리가 나오는데 오서리는 현재의 양막이고 담정리는 없어졌다. 송남리는 현 죽남의 일부이고 창촌리는 북창이며 오서ㆍ오평은 양막으로 합해졌다. 그리고 개천리ㆍ창암리는 없어졌으며 학교촌이 새로 생겼다.
월계리(月桂里)
월계리는 오정ㆍ안정ㆍ계광ㆍ송촌ㆍ월곡ㆍ율리 6개 마을로 이루어졌다. 1789년의 (호구총수)에는 오정리ㆍ송천리ㆍ정곡리ㆍ행정리ㆍ송현리ㆍ율촌리가 나오고 1914년에 계동리ㆍ광덕리ㆍ정곡리ㆍ안정리ㆍ송현리 그리고 율리ㆍ월곡리ㆍ오정리ㆍ황록리ㆍ개천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월계리라 하였다.
성산리(星山里)
성산리는 성산ㆍ누태ㆍ황록ㆍ구해로 이루어졌다. 1789년의 (호구총수)에는 엄고개(성산)ㆍ구해ㆍ누태ㆍ신기가 기록되어 있고 황록은 200년이 못된 마을이다.
성덕리(聖德里)
성덕리는 성덕ㆍ평암ㆍ사동ㆍ장두ㆍ용암ㆍ운곡ㆍ궁평 7개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1789년의 (호구총수)에 사산리(평암)ㆍ사동리ㆍ성덕리가 기록되어 있으며 1912년 (행정구역명칭)에 용암ㆍ평암ㆍ장두ㆍ죽서(성덕)ㆍ궁평ㆍ운곡이 나온다.
문암리(文岩里)
문암리는 광암ㆍ제암ㆍ매남ㆍ지장ㆍ성진원ㆍ금곡 6개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금곡과 광암에 지석묘가 있으며 호구총수(1789년)에는 개박리ㆍ생철점ㆍ금곡리가 나온다. 개박리는 제암이고 생철점(부릿점)은 확실치 않다. 매남은 천주교인들이 들어와 생촌되었고 성진원은 1960년대 나환자들이 조성하였다. 1914년 광암ㆍ매남ㆍ제암ㆍ송정ㆍ지장ㆍ금곡ㆍ궁평 일부를 합하여 문암리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