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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8회 박수량, 군자의 길을 걷다. - 상경부 尙褧賦 (1)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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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박수량, 군자의 길을 걷다. - 상경부 尙褧賦 (1) 이미지 1
제8회 박수량, 군자의 길을 걷다. - 상경부 尙褧賦 (1)


청백리 박수량은 40년의 공직생활 동안 군자의 길을 걸었다. 항상 삼가고 드러내지 않았다. 스스로를 수양하면서 겸허하게 지내고자 하였다.

이런 자세는 그가 지은 상경부 尙褧賦에 잘 나타나 있다. 상경부는 <청백리 아곡 박수량 선생 실기 實記>에 수록되어 있는데 이 부가 언제 지어졌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박수량이 수신의 지침서로 이 부를 애송하였으리라 짐작된다.

먼저 부 賦의 제목인 상경 尙褧의 의미부터 살펴보자.

상경 尙褧은 경 褧을 숭상한다는 의미이다. 경 褧은 비단 옷을 입었을 때 그 화려함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겉에 걸치는 옷을 말한다. 따라서 상경은 ‘겉옷을 보태다’, ‘겉옷을 숭상하다’는 의미이다. 이는 너무 눈에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스러워하는, 삼가는 자세를 말한다. 소위 겸허한 마음. 신독의 태도이다.

한편 경 褧에 대한 출전은 시경 詩經이다. <시경> 국풍 편의 위풍 장 ‘석인 碩人’ 글에 나온다.

碩人其頎 석인기기
衣錦褧衣 의금경의
齊候之子 제후지자
衛候之妻 위후지처

높으신 님은 키 크고 아름다우신데
비단 옷 위에 엷은 겉옷 입으셨네.
제나라 임금의 따님이요,
위나라 임금의 부인이네.

여기에서 높으신 님은 위나라 장공의 부인 장강 莊姜을 가리킨다.
장강은 제나라 태자 득신의 누이동생으로서 위나라 장공에게 시집을 갔는데 미인이기는 하나, 자식이 없어 위나라 사람들이 그녀를 석인
碩人 (높으신 님)으로 불렀다.

그러면 박수량이 지은 <상경부> 전문을 원문과 함께 읽어보자.

이 글은 읽으면 읽을수록 수신 修身에 도움이 되는 글이다. 정치가,
고위 공직자, 그리고 CEO는 반드시 한번 읽어보아야 할 글이다.


선생 일찍이 형문 홀로 닫고서 先生當獨掩衡門 선생당독엄형문
난초 방에 조용히 앉아 있네. 靜坐蘭室 정좌난실
광채 있어도 스스로 감추고 有光自韞 유광자온
입이 있어도 굳게 다물고 있네. 有口囊括 유구낭괄

글 첫 머리에서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한 선비가 홀로 방에서 신독 愼獨하고 있다.

세상 속됨 時俗의 경박함을 비웃나니 哂時俗之輕薄 신시속비경박
속인은 일평생 헛된 명예를 갈구하도다. 渴身世之浮名 갈신세지부명
열사람이 함께 칭찬하는 것을 바라고 要十目之共譽兮 요십목지공예혜
곡식 창고 헐어 다 쏟네. 費廩菌以倒傾 비늠균이도경
실질적인 덕이 안에서 무너지는 요인이 되어 基實德之內虧 기실덕지내휴
온 천하 사람들의 비웃음을 재촉하네. 速天下之非笑 속천하지비소
이전에 내가 옛 사람에게 들었거니와 曩余聞於古之人 낭여문어고지인

비슷한 것을 들어 인식시켜 가르침으로 삼겠네. 申觸類而自詔夫 신촉류이자조부

들의 비웃음을 초래하는 속인들의 어리석음을 질타하고 있다.

대저 미인이 비단 옷을 입거니와 美人之衣錦將 미인지의금장
나는 이를 자랑이라 여기지 않으리. 不以是爲耀尙 불이시위요상
이 겉옷을 걸쳐 스스로 감추리니 斯褧而自晦 사경이자회
단지 무늬가 밖으로 드러날까 두려워함이네. 惟懼夫文之外 유구부문지외 처음부터 밖으로 자랑하려는 허망됨은 없었거니와 發初無外誇之誕 발초무외과지탄
게다가 가슴에 품고 있는 진실이 있었네. 경有中含之實 경유중함지실
하물며 군자는 숨기며 닦는 법이니 矧君子之藏修 신군자지장수
어찌 감히 자신을 드러내 망치겠는가. 敢自露而自失被 감자로이자실피

박수량은 비단 옷을 입는 미인이 화려함을 감추기 위하여 겉옷을 입듯이, 모름지기 군자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숨기면서 스스로를 수양해야 함을 강조한다. 한편 이 대목에서는 군자와 소인을 대비한다. 군자는 숨기면서 자신을 닦고 소인은 자신을 드러내어 몸을 망친다. 이어서 박수량은 바람직한 군자상 君子像을 읊는다.

도덕의 수놓은 치마를 입고 道德之繡裳襲 도덕지수상습
예의의 화려한 옷을 걸치리. 禮義之華服 예의지화복
화순 和順을 품고서 나를 감싸고 韞和順以自褒兮 온화순이자포혜
광영을 감추고서 내보이지 않으리. 韜光榮以不市 도광영이불시

바람직한 군자상의 첫째 부분은 도덕과 예의, 화순 和順과 드러내지 않음이다.

밖은 흐리멍텅하여 우둔한 듯하지만 外昏昏其若愚 외혼혼기약우
안은 정성스러워 더욱 지혜스러워라. 內肫肫其益智 내순순기익지
외모는 답답하여 말더듬이 같으나 貌累累其若訥 모누누기약눌
생각은 깊은 물처럼 더욱 명철하네. 意淵淵其益哲 의연연기익철

바람직한 군자상의 두 번째는 우둔한 듯하지만 지혜롭고, 말더듬이 같으면서도 명철한 것이다. 외모는 답답하여 말더듬이 같지만, 생각은 깊은 물처럼 명철하다는 대목을 읽으면서 노자 도덕경 제45장의 ‘대교약졸 대변약눌’이 생각났다.

大巧若拙 大辯若訥 대교약졸 대변약눌

뛰어난 솜씨는 서툰 듯 하며
잘하는 말은 더듬는 듯 하다.

대교약졸 大巧若拙의 실례는 서울 봉은사에 있는 추사 김정희의 판전 글씨이다. 추사 김정희가 죽기 3일전에 썼다고 하는 판전 版殿 글씨는 꼭 초등학교 4-5학년 글씨 같다. 그럼에도 이 글씨는 서예가들로부터 가장 찬사를 많이 받는 명작중의 명작이다.

대변약눌 大辯若訥도 마찬가지이다. 말이 너무 유창하면 약장수 같은 느낌이 든다. 설득력이 떨어진다. 최고의 웅변은 약간 더듬는 듯이 하는 말이다.

역사상 최고의 웅변가중에서 고대 그리스의 웅변가 데모스테네스는 원래 말더듬이였고, 세계 제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의 처칠 수상도 어릴 때에는 말더듬이였다.

이어서 상경부는 계속된다.

남이 명산 名山이라 여겨주지 않아도 人不爲名山兮 인불위명산혜
나는 나의 옥을 감추고 있다네. 我韞我玉 아온아옥
남이 신령스런 물이라 여기지 않아도 人不爲靈源兮 인불위영원혜
나는 나의 진주를 담그고 있다네. 我潛我珠 아잠아주

<논어> ‘학이’ 편에 나와 있듯이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 것이 군자이다.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슬퍼하거나 성내지 않고, 자존심과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가고자 하는 청백리 박수량의 마음가짐이 이 글에 잘 나타나 있다.

누가 무늬와 수의 아름다움 사모하여 誰慕文繡之美 수모문수지미
지극한 도리의 진미를 가라앉혀 버리랴. 沈潛至道之腴 침잠지도지유
가슴속에는 만일 萬鎰의 보물 감추었으나, 胸藏萬鎰之寶 흉장만일지보
몸에는 십년 된 거친 베옷 걸치었네. 身周十年之褐 신주십년지갈
단지 마음에 쌓이면 반드시 드러나는 법 惟積中其必顯 유적중기필현
찬란하게 빛나 사방으로 퍼지리. 爛昭昭其四達 난소소기사달
얼굴에 윤기 흐를 뿐 아니라 등으로도 넘치니 旣粹面又盎背蔚 기수면우앙배울
성대한 문채가 찬란하게 빛나리. 文章之喧赫窺 문장지훤혁규
옛 신령스런 사람이 한 궤도였음을 보고 前靈之一軌 전령지일궤
천명의 성인이 모두 같은 길이었음을 통달하였네. 通千聖而一轍 통천성이일철
자신의 현덕 玄德을 숨기고자 하였으나 欲幽潛其玄德 욕유잠기현덕
이미 천자의 밝으신 귀가 들으셨네. 巳升聞於天聰 사승문어천총
잠시 동안 사퇴한 사람을 대신하였더니 代倦勤於俄頃屬 대권근어아경속
책력을 그 몸에 맡기네. 曆數於厥躳 역수어궐궁
스스로 어리석게 굴어 어긋나지 않으려 하나, 欲自愚而不違 욕자우이불위
현명하시고 성스러운 분께 도리어 어질다 칭찬받게 되네. 反稱賢於明聖 반칭현어명성
본체는 이미 갖추어져 완벽에 가깝거니와 體巳具而庶幾 체사구이서기
덕행으로 이름이 더욱 커지네. 魁姓名於德行 괴성명어덕행
진실로 속에 감춘 것이 외부로 드러난 것이니 寔中藏之發外 식중장지발외
비록 감추려하여도 오히려 빛나기만 하네. 雖晦掩猶炳炳 수회엄유병병
왜 소인들은 알지 못하나. 何小人之罔知 하소인지망지
공연히 밖만 다듬고 어찌 이를 힘쓰랴. 徒外飾焉是逞 도외식언시령
틈 사이 비치는 빛을 빌어 잘 난체 하고 借隙光而自衒 차극광이자현
작은 선 善을 빙자하여 성인이라 하네. 假小善而曰聖 가소선이왈성
텅 빈 가슴은 감출 수 없어 洞肺奸之不可隱 동폐간지불가은
비록 역겨워도 어찌 숨길 수 있나. 雖厭然其焉廋 수염연기언수

군자는 드러내지 않는다. 잘 난체 하지 않고 감추려 한다. 겸손, 겸허의 덕을 스스로 갖추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안다. 군자가 비록 감추려고 하여도 그 덕이 오히려 빛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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