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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29회 다시 송흠의 묘소에서 (1) - 평양할머니 묘
작성자 관리자
내용
제29회 다시 송흠의 묘소에서 (1) - 평양할머니 묘


이제 역사인물 기행을 마무리 할 때가 되었다. 그 동안 2011년 2월부터 8월까지 7개월간 장성군청 인터넷 홈페이지에 장성인물 1세대인 지지당 송흠(1459-1547)의 흔적을 답사하였다. 처음 연재를 시작할 때도 맨 먼저 송흠 선생 묘소를 갔는데 연재를 마치면서 다시 묘소를 찾는다. 관수정을 막 지나 재실 건물과 바로 닿은 골목에 들어서서 산을 향하여 계단을 오른다. 선방산 船坊山 정상에는 묘소가 세 개 있다.

판중추부사(종1품) 지지당 송흠 묘소는 가장 먼 곳에 있다. 거북이 등과 구름과 용이 머리에 얹어진 비석이 있는 묘이다. 송흠 묘소 바로 앞에는 후손인 공조참의 송공의 묘소, 그리고 맨 앞에 조그만 묘가 하나 있다.

맨 앞의 비석 없는 자그마한 묘가 누구 묘인지를 송씨 문중 분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평양 할머니 묘란다. 평양 할머니란 말이 상당히 흥미로워서 구체적으로 어떤 분인지를 다시 물었더니, 그냥 평양할머니라고 구전되어 내려 올 뿐이라고 답한다. 그러면서 이 할머니를 매년 제향을 할 때 지지당 선생과 함께 모신단다.

그렇다면 이 할머니는 송흠과 평생 산 후실 내지 애첩이었음이 분명하다. 평양이란 지역이름이 붙었기에 어쩌면 평양 기생을 한 여인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한국고전번역원의 고전번역종합 D/B의 번역총서에서 읽은 이기(李墍 : 1522년∼1600년)가 편찬한 <송와잡설(松窩雜說)>에 나오는 송흠의 일화가 생각난다.
(국역 지지당 유고에도 <송와잡설>에 나온 글이 그대로 실려 있다.)


이기는 호가 송와(松窩)로서 1555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571년(선조 4) 직제학이 되었으며, 1591년에 대사간이 되었고, 대사헌을 차례로 역임한 뒤 이조판서에 올랐다. 이후 1599년 다시 대사헌이 되고, 이어 예조판서·이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죽은 뒤 1603년에 2품 이상 재신을 청백리로 뽑는 데 녹선되었고, 그 뒤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그는 청빈하여 한사(寒士)나 다름없이 벼슬생활을 하였다.

송와잡설은 이기가 지은 시화만록집 (詩話漫錄集), 즉 야담집이다. 이 문집은 ≪대동야승 大東野乘≫안에 수록되어 있는데, 기자 조선 때부터 선조 임금 때까지의 기록이 130여 장 포함되어 있다. 그중에는 수령들의 탐오(貪汚)함을 비판한 것도 있고, 신식 병기의 편리함을 인정하고, 중국과 우리나라의 농기구를 용도에 따라 설명하는 과학적인 면모도 보이고 있다.

그러면 송흠에 관한 일화를 그대로 읽어보자.

감사 송흠(宋欽)은 늙어서 호남 방백이 되었으나, 미인[尤物]에 대한 생각은 능히 잊지를 못하였다. 순찰하다가 기생 없는 고을에 이르면, 저녁에는 반드시 훈도(訓導)를 방안에 불러들여서 나그네의 잠자리가 쓸쓸하다는 뜻을 말하였다. 그러면 훈도는 나가서 원과 의논하여 관비(官婢) 중에 얼굴이 조금 쓸 만 한 자를 골라서 잠자리를 모시게 하였다.

공이 순찰하다가 하루는 아주 궁벽 진 고을에 도착하여 역시 훈도를 불렀다. 훈도는 산증(疝症)이 재발(再發)하여 능히 굴신(屈伸)하지 못하던 참이었다. 새벽이 되어 지팡이를 잡고 가서 창밖에 엎드려, 소리(小吏)를 시켜 아뢰기를,

“저녁에 부르심을 받았으나 마침 병을 앓아서, 거의 죽을 뻔하다 요행히 살아나 이제야 왔습니다.”
하니 공은,

“훈도는 나의 병은 모르는 자로다. 저녁 훈도는 서로 접견하지마는 새벽 훈도는 본디부터 보기를 즐기지 않으니, 물러가라.”
하였다.


송흠이 전라감사를 한 시기는 1533년 말에서 1534년 사이이니 75세, 76세 때이다. 그런데 송흠이 이런 나이에도 여인을 좋아하였으니 참 대단하다.

한편 송흠의 부인 하음 봉씨(河陰奉氏)는 1461년에 태어나 1539년에 별세하였다. 그리고 선방산에 송흠과는 따로 안장되어 있다.

그런데 송흠은 1547년에 별세하였으니 봉씨 부인이 돌아가신 뒤 8년간은 부인이 없는 상태에서 홀로 지냈다는 것인데 이 때 송흠을 챙겨준 분이 평양할머니 아니었을까? 그래서 지금도 평양할머니를 송흠가 함께 제사지내는 것이 아닐까. 아무튼 청백리 송흠에게 이런 로맨스가 있다니, 참 재미있다. 스토리텔링 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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