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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22회 장성 기영정에서 (4) - 기영정 옛터를 지나면서 감회 시를 쓰다.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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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장성 기영정에서 (4) - 기영정 옛터를 지나면서 감회 시를 쓰다. 이미지 1
제22회 장성 기영정에서 (4) - 기영정 옛터를 지나면서 감회 시를 쓰다.

기영정 마루위에 붙어 있는 편액 중에 송흠과 송인수의 기영정 시는 한글로 번역하였다. 그런데 추담 김우급이 지은 ‘기영정 옛터를 지나면서’ 소감을 쓴 한시와 그 옆의 이희웅의 차운 시는 한글로 번역을 하지 못하여 그냥 생략하였다.

그런데 며칠 전에 <국역 지지당 유고>를 다시 펼쳐서 여기저기를 훑어 보니, 김우급과 이희웅의 시가 한글로 번역되어 있다. 기영정 답사 이야기를 완결하다는 의미로 여기에 싣는다. 한시를 읽어 보니 두 시 모두 기영정이 1597년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진 이후의 감회를 적고 있어 더 의미가 있다.

먼저 추담 秋潭 김우급 (金友伋 1574-1643)의 시이다. 김우급은 장성 사람으로 조부는 장성 황룡면에 있는 요월정 주인 김경우(金景愚 : 1517-1559)이다. 1612년(광해군 4)에 진사(進士)로 합격하였다. 1618년(광해군 10년)에 폐모론(廢母論)에 반대하다가 권신 이이첨의 미움을 받아 유적(儒籍)에서 삭거되었다. 그는 인조반정 후에 목릉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변이중(邊以中)의 문인이고, 이익(李瀷) 등과 교유하였다. 병조참판에 추증되었고 문집으로는 《추담집(秋潭集)》이 있다. 한편 요월정은 조선의 명종 때 공조좌랑을 지낸 김경우가 1550년대에 산수와 벗하며 풍류를 즐기기 위하여 만든 것으로서 당대의 명사인 하서 김인후와 고봉 기대승, 송천 양응정이 시를 읊고 놀았다.





기영정의 옛 터를 지나면서 소감을 쓰다
過 耆英亭 故墟 有感

추담 김우급

듣건대 상공이 벼슬을 물러난 때에
중종임금은 이 곳 임천 林泉에 잔치를 베풀도록 하였네.
규암 송인수의 옥절은 꽃 아래 이르렀고
고씨(도사 고운을 말함)는 연꽃 휘장을 물가에 설치했네.


聽說相公致仕年 청설상공치사년
君王賜宴此林泉 군왕사연차임천
圭菴玉節臨花低 규암옥절임화저
高氏蓮帷倚水邊 고씨연유의수변


폐허가 된 기영정 옛 터에서 예전에 전라관찰사 규암 송인수가 중종임금의 명을 받고 송흠을 위하여 잔치를 베푼 것을 생각하는 시이다. 여기에서 고씨는 1543년 9월에 쓴 송흠의 잔치 글 말미에도 적혀 있듯이 전라 도사 고운 高雲을 말한 듯하다. 도사는 감사의 일을 처리하는 실무책임자요, 부관이다.


석자의 그림 병풍에는 잔치 장면 그려져 있고
일시에 우러러 바라보니 선인 仙人인가 의심했네.
호화스러움 사라지고 옛터만이 남아있구나.
연기 낀 나무 가지엔 오직 두견새 울음 들려올 뿐


三尺畵屛摸勝事 삼척화병모승사
一時瞻望擬群仙 일시첨망의군선
豪華去盡遺墟古 호화거진유허고
煙樹惟聞哭杜鵑 연수유문곡두견


김우급은 불타 없어진 기영정 터에 와서 연기 내음 나는 나뭇가지 냄새를 맡고, 슬피 우는 두견새 울음소리를 듣는다. 병풍 속에만 남아 있는 호화스런 잔치 장면을 회상하면서 세월이 무상함을 느낀다.

편액에는 참판 김우급의 한시에 이어서 승지 이희웅의 차운시가 있다. 이희웅은 7언 율시의 운 연 年 천 泉 변 邊 , 선 仙 견 鵑을 따라 시를 짓는다.


차운

승지 이희웅, 호 기천

옛날은 지금과 몇 해를 지났는가.
번화한 유적은 흐르는 물에 붙이어졌네.
기영정 무너진 언덕에는 푸른 풀만 무성하고
관수정 푸른 계곡 변두리도 퇴락하였네.


昔日今時隔幾年 석일금시격기년
繁華遺跡付流泉 번화유적부류천
耆英堂破靑莎畔 기영당파청사반
觀水亭頹碧澗邊 관수정퇴벽간변


청렴한 덕행은 누구 있어 짝하리오.
공명을 이룬 뒤 신선되기를 바랐다네.
그 누가 사업이 이 같음 알았으리.
유독히 깊은 숲에 두견새 울부짖네.


淸德由來疇作匹 청덕유래주작필
功名成後願從仙 공명성후원종선
誰知事業曾如許 수지사업증여허
惟有深林啼蜀鵑 유유심림제촉견


이 한시는 인조 14년, 1636년 늦은 봄에 지어진 것으로 <국역 지지당유고>에 나와 있다.

이희웅(1562-1648)은 호는 기천 杞泉이고 송천 양응정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1612년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권신 이이첨의 미움을 사서 뜻을 펴 보지 못하다가, 인종 반정 후 1624년 식년 을과에 합격하여 사헌부 감찰, 예조좌랑 등을 지냈다.

기영정을 둘러보면서 아쉬운 점은 한글로 번역된 한시 글이 안 붙어 있다는 점이다. 경기도 파주의 정자를 가보면 한시가 모두 한글로 번역되어 있다. 작가의 약력도 곁들여서. 그래야 사람들이 찾아와서 옛날을 회상하기도 하고 이야기도 할 수 있으리라. 사소한 것 같지만 이런 것이 바로 문화관광의 경쟁력이다.
담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