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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20회 장성 기영정에서 (2) - 전라감사 송인수, 송흠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다
작성자 관리자
내용
제20회 장성 기영정에서 (2) - 전라감사 송인수, 송흠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다


송흠의 잔치 감상 글을 계속하여 읽어 보자.

수작 酬酌 (술잔을 서로 주고받음)하고 읍양 揖讓 (읍하는 동작과 사양하는 동작)하는 것은 한결같이 한나라의 예를 따랐으며 술잔을 돌리고 안주를 드리는 것도 모두 관원들이 맡았다. 그리하여 여러 고을의 기녀들은 다만 풍악만을 이 연주할 따름이요, 정자를 빙둘러 구경하는 자도 몇 천 명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이미 마시는 예를 마치자 감사는 재차 주연을 베풀도록 명하였는데 이는 따로 은근한 뜻을 보이려는 것이다. 술잔이 오가고 갖가지 풍악을 번갈아 연주하는 데, 정업곡 定業曲을 먼저 하고 향악으로는 처용무, 관음찬, 공 던지는 기예, 노 젓는 노래 등으로 무릇 귀와 눈을 즐겁게 할 만한 것은 다 베풀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리하여 대중들과 더불어 더 할 나위 없이 함께 즐기면서 마쳤다.

음식과 술을 마시고 나서 향연이 열린다. 풍악이 울리고 노래와 춤이 곁들여진다. 그 중 하나가 ‘처용무’와 ‘관음찬’이다.

처용무(處容舞)는 궁중이나 관아의 의례에서 처용(處容)의 가면을 쓰고 잡귀를 쫓아내는 춤이다. 처용무(處容舞)의 유래는 『삼국유사(三國遺事)』 권2 「기이편(紀異篇)」2에 나오는 신라 헌강왕(憲康王) 때의 처용설화(處容說話)에서 출발한다.

신라시대 동해 용왕의 아들인 처용이 밤놀이에 취해 늦게 귀가하여 아내를 범한 역신을 쫓아내는 축귀의식에서 유래한 것이다.



서울 밝은 달밤에 밤 깊도록 놀고 지내다가
들어와 잠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로구나.
둘은 내(내 아내) 것이지마는 둘은 누구의 것인고.
본디 내 것이지만 (내 아내이지만)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운바 있는 처용가이다. 이 처용이 추는 춤이 처용무인데 이 춤을 송흠의 잔치에서 추었단다.

『악학궤범(樂學軌範)』에 의하면 섣달그믐날 붉은색 옷을 입은 수십 명의 동자로 이루어진 진자(侲子)들의 축귀의식무(逐鬼儀式舞)가 끝난 뒤에 처용무를 추었다. 이것은 전도(前度)와 후도(後度)로 나뉘는데, 전도에서는 오방처용무(五方處容舞)만 추고, 후도에서는 처용무에 이어 학무(鶴舞), 연화대, 불가(佛歌)인 미타찬(彌陀讚), 본사찬(本師讚), 관음찬(觀音讚)에 의한 불교적 춤이 이어진다.


오방은 청, 백, 홍, 흑, 황색을 말하는 데 동방(東方)은 청색, 서방(西方)은 백색, 남방(南方)은 홍색, 북방(北方)은 흑색, 중앙(中央)은 황색이다. 오방처용무는 5인이 청, 백, 홍, 흑, 황의 순서로 등장하며 이때 반주는 수제천(壽齊天)이다. 입장해서 좌로 돌아 북향한 다음 춤이 시작된다. 이어 처용가(處容歌)를 부르고 다양한 동작의 춤이 이어진다. 출연 인원은 『악학궤범』에는 처용 5인, 의물 6인, 악사 40인이 등장한다고 하여 대규모였음을 알 수 있다.

관음찬은 관세음보살을 찬양하는 노래이다. 한 인터넷 사이트 블로그에서 찾은 ‘관음찬’의 해설은 재미있다.




白衣觀音無說說 백의관음무설설
南巡童子不聞聞 남순동자불문문
甁上綠楊三際夏 병상녹양삼제하
巖前翠竹十方春 암전취죽시방춘


흰옷의 관음보살(觀音菩薩)은 말없이 설법을 하시고,
남순 동자는 듣지 않아도 알아듣는구나.
병에 꽂은 버드나무 푸른 가지는 언제나 여름인데
바위 앞 푸른 대숲은 시방 봄이로다.

관음찬은 관세음보살을 찬미하는 노래이다. 관음신앙은 민간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신앙보다 앞선다. ‘관세음보살 남무아미타불’만 잘 외우면 극락으로 간다는 것이 민간신앙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불교의 그림이나 조각품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한 것이 관음보살상이다. 관음보살은 32응신(應身)이라 하여 여러 가지 모습으로 중생들 앞에 나타나서 사람들을 제도하는데 백의민족에게 와서는 백의관음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화엄경에서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차례대로 친견하기 위해서 남쪽으로 가다가 28번째 선지식인 관음보살을 만나는 것을 뜻해서 남순(南巡)동자라 한다. 관음보살의 그림에는 언제나 왼쪽 아래에 이 동자가 있다. 이 동자가 있어서 관음보살은 더욱 빛이 난다. 두 사람은 항상 같이 있지만 말이 없다. 말이 없으면서도 다 설법을 하고 모두 알아듣는다.

관음보살의 그림을 보면 병을 하나 들고 있고, 그 병에는 언제나 푸른 버드나무가지가 꽂혀 있다. 병에는 중생들의 병고를 치료하는 불사약(不死藥)인 감로수가 들어 있다. 푸른 버드나무는 중생들의 탐욕과 분노의 열기를 식히기 위하여 그늘을 드리워주는 의미이다. 그래서 과거, 현재, 미래, 언제나 여름이다. 그림을 다시 한 번 보면 계시는 곳이 아름다운 바위가 있는 푸른 대나무 숲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래서 관음보살은 어디를 가도 늘 봄이다.

송흠의 잔치 글은 계속된다.

금오 金烏 (태양을 말함)의 서쪽에 가려진 궁벽한 이런 시골에 천고 千古에 듣지 못하였던 성대한 일이 있으리라고는 미처 깨닫지 못하였다. 노생의 나이 거의 구십인데도 특별히 성상의 은혜를 입었고 전라감사 송상국이 마침 성상의 돌보아 주심을 받아서 성심으로 접대했으며 또 이 정자를 기영정 耆英亭이라 이름하고 이어서 칠언율시 한 수를 지어 들보위에 걸게 하였으니, 바라건대 후세 사람이 이를 보아 준다면 참으로 큰 다행이겠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기록하여서 나의 자손에게 전한다.


가정 嘉靖 계묘 癸卯 (1543년) 9월 1일 ( 이때의 도사는 고운이요, 본 고을의 수령은 서군위 이었다.)

송인수는 송흠의 잔치를 기리기 위하여 칠언율시 시를 한 수 지었고 그 시가 바로 기영정 원운이다. 그리고 송흠도 잔치 감상 글 말미에 차운 시 한 수를 짓는다.

기영정 차운


천고에 호남의 관찰사가 몇 번이나 바뀌었던가.
송상공의 치화는 자신을 수양함 부터였네.
일심에 어찌해 두세 개 덕행이 있으리오.
쇠하여 없어진 온갖 일이 다시금 일어난 오십 주 고을일세.

千古湖南閱幾侯 천고호남열기후
相公治化自身修 상공치화자신수
一心寧有二三德 일심녕유이삼덕
百廢俱興五十州 백폐구흥오십주

다른 날, 오늘의 모임을 잊기 어렵고
다른 해에 이 해의 가을을 어찌 상상하리.
개중에 어떤 일로 섭섭함과 슬픔을 이겨내리.
무엇보다 한 恨 됨은 등공 鄧公이 떠나감을 만류치 못함이라.

異日難忘今日會 이일난망금일회
他年可想是年秋 타년가상시년추
箇中何事堪怊悵 개중하사감초창
最恨鄧公挽不留 최한등공만불류


원운 元韻

감사 송인수, 시 諡 문정, 호 號 규암

호해의 영검은 우리의 영공이 있게 하였고
일생을 빙벽 氷壁같이 살아 청고함 닦았다네.
주상의 성은이 겹침에 포상이 연달았고
부모를 모시고자 하는 효심이 깊어서
여러 번 외직을 청하였네.

湖海維靈有我侯 호해유령유아후
一生氷壁苦淸修 일생빙벽고청수
主恩稠疊連褒賞 주은조첩연포상
孝意純深數乞州 효의순심수걸주

서가에는 이 · 삼천권의 책만이 가득 꽂혀있고
연세는 높아서 지금 86세 춘추라네.
기영정 위에서 좋은 잔치 佳會를 벌였으니
단청에 옮기어 살면서 만년을 머무르리.

架揷二三千卷帙 가삽이삼천권질
年高八十六春秋 연고팔십육춘추
耆英亭上成佳會 기영정상성가회
移入丹靑萬世留 이입단청만세류
담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