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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17회 다시 관수정에서 (10) - 가훈 비석과 친필 글씨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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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회 다시 관수정에서 (10) - 가훈 비석과 친필 글씨 이미지 1제17회 다시 관수정에서 (10) - 가훈 비석과 친필 글씨 이미지 2제17회 다시 관수정에서 (10) - 가훈 비석과 친필 글씨 이미지 3
제17회 다시 관수정에서 (10) - 가훈 비석과 친필 글씨

관수정 정자 앞에는 비가 하나 있다. 관수정 정문에서 바라보면 왼편에 있는 자그마한 비가 그것이다. 이 비는 앞면은 한자로 뒷면은 한글로 되어 있다. 비 앞면은 가훈 家訓이라고 적혀 있다.

이 가훈 비가 바로 지지당 송흠 선생이 87세에 지은 가훈을 적은 비이다. 앞면의 한문은 해독하기가 어려워, 뒷면에 있는 한글로 번역된 가훈을 읽는다.


지지당 가훈 ( 87세에 지음)

주자의 시에 이르기를, “모든 일은 충과 효 밖에는 바랄 것이 없다.” 고 하였으니 대저 사람이 사람됨은 다만 충과 효에 있을 따름이다. 무릇 기거동작과 언행에 있어서는 모든 일이 천만가지로 다 다르나, 하나로 합쳐짐은 충효 忠孝 두 글자에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널리 배우고 신중히 생각하고 절약하고 검소하게 하며 욕심이 적은 것이 바로 충성하고 효도하는 사람이다. 사악함을 막고 그 정성스런 마음을 간직하여 자신을 세워 남을 구제하는 것도 충성하고 효도하는 사람이다. 돈후화목하고 풍속을 바르게 하여 독실하게 믿어 세상을 다스림에 있어서도 어느 것이나 충성과 효도 가운데서 나오지 않는 것이 없는 것이니 충성과 효도를 한 뒤에야 나는 반드시 사람이라고 말하겠다. 아! 사람이고서 효도하지 않는 다면 사람이겠는가.


또! 사람이고서 충성하지 않는다면 사람이겠는가. 그러기에 효도하고 효도하지 않음과 충성하고 충성하지 않음은 곧 그 사람의 사람답고 사람답지 못한 것이 어떤 가를 돌아볼 뿐이다. 생각하노니 나의 자손들은 삼가고 경계할 진져.

가정 嘉靖 (명나라 세종의 연호) 23년 을사 (명종 원년 1545년)
정월 기망(열엿새 날)에 노옹은 병풍에 쓰노라. 16대 손 송영화 근역

서양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전통사상 중에 가장 부러워하는 것이 충효사상이다. 그중에도 효도 사상은 서양사람 들에게는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다. 지금은 효 사상도 많이 퇴색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효는 우리의 고유한 전통이다.

한편 관수정 정자 안의 양팽손 편액 바로 옆에는 초서체 비슷하게 일필휘지한 글씨가 하나 있다. 이 편액 또한 한시 같은데 그 출처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런데 6월의 어느 날 관수정을 다시 들렸을 때, 자세히 살펴보니 이 편액의 첫 부분이 ‘취o건상인’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strtolower('<')국역 지지당 유고>에 나와 있는 시를 뒤지었다. 그랬더니 지지당 유고 p153에서 취증건상인 醉贈健上人 시를 찾았다.

醉贈健上人

一生期必醉中魂
晝掩春扉到玉山
何處名僧求謁我
暫開花眼熟相春

취증건상인

일생기필취중혼
주엄춘비도옥산
하처명승구알아
잠개화안숙상춘
한 평생 필연코 술 취해 있을 것인가.
봄날 대낮에 사립문이 닫치고 옥산 玉山이 무너지네.
어느 곳 명승 名僧이 나를 뵙기 청하는가.
잠시 눈 花眼을 뜨고 서로를 바라 볼 뿐.

이 시를 읽으면 꼭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시중유화 詩中有畵. 사립문은 닫혀 있고, 집에는 한 노인이 술에 취한 채 있다. 한 스님이 그를 만나기로 청하고. 그리고 두 사람은 그냥 바라만 본다.

이 시를 쓸 당시에 지지당 송흠은 몹시 술에 취하였나 보다. 그리고 한 스님과 만났다. 한 스님이 사립문이 닫힌 집에 와서 그를 만나기를 청하였다. 그리고 서로 눈만 마주쳤다. 말을 안 하여도 서로가 통하였을까. 이심전심. 아니면 선생이 너무 술에 취하여 말하기도 힘들었을까.

아무튼 이 시는 지지당 송흠이 쓴 친필 글씨라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다. 잘 아는 서예가에게 이 글씨에 대한 평가를 한번 받아야겠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 글씨가 언제 써진 것인지 알 수 가 없다.

7언4구 한시 중 옥산 玉山은 원래 아름다운 자태나 풍채가 수려한 사람을 말한다. 옥이 산처럼 쌓여 있으니 얼마나 화려한가. 그런데 옥산이 무너진 것이다.(倒 玉山). 수려한 풍모를 가진 사람이 술에 몹시 취하여 쓰러진 것이다. 옥산이 무너진다는 표현은 옥산 붕 崩, 옥산 퇴 頹, 옥산 도 倒, 모두 같은 의미이다.

한편 이 시 뒤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詩山有崔斯文
是外無知者
知止堂醉草

시산유최사문
시외무지자
지지당취초

시산 詩山에는 최사문 崔斯文만 있을 뿐, 이 밖에는 아는 자가 없었다. 지지당이 취하여 글씨를 씀.

그리고 이 현판에는 상당히 긴 글이 한문으로 적혀 있다. strtolower('<')지지당유고>에서 찾은 이 글 번역본을 한번 읽어 보자.

산양의 동헌에서 읊은 시 이하 8수의 시는 모두 유고가 간행된 이후에 추가로 찾은 것이다. 그 가운데 건상인에게 지어준 시는 바로 선생이 손수 쓴 글씨이다.

선생의 필적은 산일되어 전하는 것이 없는 데 오직 이 한 장이 승사僧舍(스님들의 숙소 내지 사찰)에 간직된 것으로 몇 백 년이 되었는 지는 알 수가 없다. 이제야 발견되어 사람으로 하여금 애완이 되어 진주, 보석처럼 더욱 진귀하게 여겼으니 어찌 기이하지 않으리오.

이에 원본을 본떠 판각하여 오래도록 전할 것을 도모하여 또 여기에 덧붙여 기록하노라.

이 글을 읽어보니 지지당 선생의 친필 글씨는 절방에서 나왔고, 이 편액 또한 절에서 판각된 듯하다. 조선의 승려들은 고려의 팔만대장경도 판각하는 재주가 있을 정도로 판각 솜씨는 가히 세계 최고였다.

이 친필을 포함한 8수의 시는 아마도 1717년에 지지당유고가 간행된 이후에 추가로 찾은 것 같다. (8수의 시는 이 시를 비롯하여 strtolower('<')산양의 동헌에 차운함>, strtolower('<')산양관에 차운함>, strtolower('<')능성의 봉서루에 차운함>strtolower('<')산양의 열선루에 차운함>등이다.)


이제 이 글을 마지막으로 관수정에 걸려 있는 여러 편액과 그리고 비에 대한 기행을 마치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지만 이 정도의 해설도 큰 진전이라고 생각된다. 필자에게도 큰 보람이다. 더 욕심을 낸다면 송씨 문중 분들과 역사 문화에 관심 있는 분들을 모시고 언제 한번 관수정에서 strtolower('<')관수정 이야기- 지지당 선생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 > 강의라도 한 시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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