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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16회 다시 관수정에서 (9) - 류사, 이문건, 김익수, 송호림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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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다시 관수정에서 (9) - 류사, 이문건, 김익수, 송호림

이제 관수정에 걸려 있는 편액 중 무장현감 류사와 이문건, 김익수 그리고 송호림의 차운 시 해설만 남았다.

먼저 무장현감 류사의 시부터 감상하자.

敬 次

鷗盟晩日未宜寒 구맹만일미의한
斲石臨流起曲欄 착석임류기곡란
山勢任形高下影 삼세임형고하영
魚群得計淺深灘 어군득계천심탄

삼가 운에 맞춰 씀

갈매기 맹세는 해가 져도 추위를 모르기에
바위를 깎아서 물가에 정자를 지었다네.
산세는 형체를 따라서 그림자 높낮이고
고기떼 맘대로 노닐고 여울은 옅고 깊네.

一竿正落調元手 일간정락조원수
萬象全輸博物觀 만상전수박물관
行道葆眞俱不負 행도보진구불부
更綠何事熱心肝 갱록하사열심간

茂長縣監 무장현감
柳泗 류사

낚시대 드리매 정말로 손 따라 움직이고
갖가지 형상은 전부가 널따란 구경거리.
길을 걸어가며 참을 지켜 모두 다 어긋나지 아니하였고
또 다시 무슨 일로 폐와 간을 태우리까.

무장현감 류사

무장현감 류사 (1502-1571)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덕동에 있는 호가정 浩歌亭 주인이다. 정자 이름은 중국 송나라 소강절이 말한 호가지의 浩歌之意에서 따온 것이다. 류사는 광주에서 태어나 27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사헌부들에서 일하다가 무장현감, 전라도사, 종성부사 등을 지냈다. 그는 말년에 고향에 내려와 호가정을 짓고 유유자적한 삶을 살았다. 담양 서하당 주인 김성원이 그의 사위이기도 하다.

다음은 이문건의 차운 시이다.

敬 次

亭下淸溪照膽寒 정하청계조담한
晩年頤養愛憑欄 만년이양애빙란
優容欲似波涵影 우용욕사파함영
勇往堂如瀨赴灘 용왕당여뢰부탄

삼가 운에 맞춰 씀

정자 밑 맑은 냇가 간담이 시원하고
만년에 편안하게 난간에 기댐을 좋아하네.
우아한 얼굴은 물결이 그림자를 머금은 듯
용감하게 나아감은 마땅히 여울에 나아간 듯.

不息天機閑裏覺 불식천기한리각
無窮物理靜中觀 무궁물리정중관
逍遙剩得吾眞樂 소요잉득오진락
塵穢何從惱肺肝 진예하종뇌폐간

前奉禮 休叟 李文楗

쉼 없는 천기 天機를 한가히 깨닫고
무궁한 물리 物理를 고요히 뚫어보네.
소요 逍遙에 참다운 즐거움이 있으니
어디서 티끌과 먼지가 폐와 간을 괴롭히리.

전 봉례 휴수 이문건

이문건 (1494-1567)은 호가 휴수이고 조광조의 문인이다. 1513년에 사마시에 합격한 후 1521년에 신사무옥에 연루되어 전라도 낙안에 유배되었다. 1527년에 사면되어 승정원 주서로 발탁되었고, 승문원 판교가 되었다. 그 뒤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성주에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괴산의 화암서원에 제향 되었다.


한편 나주목사 김익수는 차운 시 3수를 짓는다. 3수나 짓다니 참 대단한 열정이다. 이 시는 김익수가 1543년 나주 목사 시절에 이곳에 들러서 송흠을 뵙고서 시를 쓴 것 같다. 김익수는 1521년(중종 16) 세자시강원설서에 이어 지평을 거쳐, 1529년 경기도 재상어사(京畿道灾傷御史)로 파견되었다. 1536년 충청도 암행어사로 다녀와 장령· 동부승지가 되었다. 이 해 부인의 투기로 첩을 독살한 사건이 있어 체직되었으나 이듬해 다시 예조참의가 되었다. 1543년 진하사로 북경에 다녀와 충청도관찰사에 제수되었고, 다시 나주목사로 부임하였다. 그런데 나주목사 시절에 업무를 소홀히 하였다 하여 사간원의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敬次 三首

제1수

吾公性度好淸寒 오공성도호청한
乞老歸來臥竹欄 걸노귀래와죽란
更起危亭依絶岸 갱기위정의절안
每臨幽磵聽鳴灘 매임유간청명탄

삼가 운에 맞춰 3수 씀

선생의 성품은 청한 淸寒을 좋아하니
사직하고 귀향하여 난간에 비기었네.
또 다시 높은 정자를 벼랑에 세우고서
언제나 골짜기의 물소리 듣는구나.

本心己自盈時得 본심기자영시득
至理須於動處觀 지리수어동처관
歲晩相親眞不分 세만상친진불분
多慙氷玉照塵肝 다참빙옥조진간

본심은 예전의 한창 때에 얻어졌고
천리 天理는 모름지기 동처 動處에 살피었네.
늘그막 친분은 버릴 수 없기에
빙옥 같은 지조에 내 스스로 부끄럽네.
제2수

數間精構俯紺寒 수간정구부감한
政合幽人獨倚欄 정합유인독의란
秋葉露澆丹似渥 추엽로요단사악
晴川水落淺成灘 청천수락천성탄

두어 칸 정자를 꾸미고 시원함 굽어보매
정녕코 묻혀 사는 이 (幽人) 홀로 지내기 합당하네.
가을 잎 이슬에 젖어서 빨갛게 물들었고
맑은 냇가 낙수 落水는 얕게 여울 이루었네.

淵源自與高情愜 연원자여고정협
玉潔那容俗眼觀 옥결나용속안관
爲乞先生分斗碧 위걸선생분두벽
夜深花月洗心肝 야심화월세심간

깊은 물 저절로 높은 뜻 북돋아 상쾌하고
옥같이 고결함 어째서 속세의 모습 俗眼 용납하리.
원컨대 선생과 고상함 나누기 비노니
깊은 밤 달빛에 마음을 말끔히 씻었다네.


제3수

觀水亭前雪色寒 관수정전설색한
先生今日許凭欄 선생금일허빙란
山頭旭旭迎新景 산두욱욱영신경
氷下瀧瀧聽石灘 빙하롱롱청석탄

관수정 앞에는 눈빛 雪色도 차가운데
선생은 오늘도 난간에 비겨 있네.
산마루 환하게 햇빛을 맞이하고
빙하에 졸졸졸 물소리 들리누나.


赤葉黃花違宿約 적엽황화위숙약
靑松綠竹政堪觀 청송록죽정감관
那時不得相追侍 나시불득상추시
待使吾誠記肺肝 대사오성기폐간


羅州牧使 金益修

단풍잎 누런 꽃은 옛 약속 어기었고
푸른 솔과 녹색의 대나무 정말로 볼만하네.
어째서 때때로 모시질 못하였던가.
내 다만 진실로 마음에 기억할 뿐.

나주목사 김익수

나주목사 김인수에 대하여 더 알아보자. 김익수는 1544년에 다시 예조참의가 되고, 1545년에 명종이 즉위하자 충청도관찰사로 파견되었다가 돌아와, 장례원판결사를 거쳐 1546년 우승지 · 도승지가 되었고, 지방의 자제를 훈도할 방법을 진언하여 〈외방학교신명절목 外方學校申明節目>이 마련되자 이를 전국에 권장하기에 이르렀다. 이어 형조참판이 되고, 이듬해 다시 충청감사가 되어 여러 읍의 수재(水災)를 해결하는 데 노력하였다. 1548년 병조참판을 거쳐 이듬해 관상감제조가 되었다. 1549년 온성에서 야인들이 노략질하는 일이 발생하자, 함경도 비변대책을 건의하기도 하였다.

한편 관수정 정자 한 곳에 송호림 宋虎林의 한시가 적힌 편액이 있다. 송호림(1923년 ~1996년)은 육군 중장 출신으로서 국회의원도 한 사람이다. 일본 와세다 대학 재학 중 태평양 전쟁이 종전되어 귀국하였고, 육군사관학교를 제3기로 졸업하고 군인이 되었다. 1961년 5·16 혁명이후 군정 시절에 전라남도 지사를 지냈으며, 1973년에 육군 중장으로 예편하여 제4공화국에서 제9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런데 이 분의 한시 편액이 왜 이곳에 걸려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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