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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12회 송흠, 여산군수 시절에 호산춘 술을 빚다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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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송흠, 여산군수 시절에 호산춘 술을 빚다.


이긍익(1736 영조 12-1806 순조 6)이 쓴 <연려실기술> 제9권 중종조 고사본말 (中宗朝故事本末)의 중종조의 명신(名臣)에 기록된 송흠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읽어 보자.

송흠(宋欽), 자는 흠지(欽之)이며, 호는 지지당 (知止堂)이요, 본관은 신평(新平)이다. 기묘년에 태어나서 경자년에 사마시에 뽑혔고, 성종 임자년에 문과에 올라 벼슬이 판중추에 이르렀다. 기사 耆社 (늙은 정승들의 모임)에 들고 청백리로 뽑혔다. 시호는 효헌공(孝憲公)이고 나이 90세에 죽었다.

청백하고 검소하고 벼슬에 욕심이 없음이 조원기(趙元紀)와 같았고, 여러 번 1품 품계에 올랐다. 공이 매양 지방에 수령으로 부임할 때에 신영(新迎)하는 말(馬)이 겨우 세 필 밖에 안 되었다. 공이 타는 말이 한 필이고, 그의 어머니와 아내가 각각 한 필씩 탔으므로, 그때 사람들이 ‘삼마태수(三馬太守)’라고 불렀다.

여산군수(礪山郡守)가 되었을 때, 고을이 큰 길 옆이어서 손님은 많은데 대접할 것이 없어, 특별한 방법으로 술을 만들었는데, 이것을 ‘호산춘 (壺山春)’이라 했다. <행장>


이 글을 보면 송흠은 여산군수 시절 호산춘 (壺山春)이란 술을 만든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지지당 유고>를 찾아보니 호산은 여산의 별호로서 여산은 물맛이 좋아서 호산춘 술은 맑고 차가우며 그 맛이 변하지 아니하여 비록 담그는 법을 좇아서 빚었대도 색깔과 맛이 모두 여산 만 못하다 하였다.

여산은 교통의 요충지로서 전라도로 왕래할 때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다. 지금도 고속도로로 서울을 갈 때에 차가 여산 휴게소에서 쉰다.
송흠은 1515년 그의 나이 57세에 여산군수를 하면서 손님이 너무 많이 오기 때문에 예산을 절약하기 위하여 손수 술을 담아서 손님을 대접한 것이다. 공무원인 필자는 송흠으로 부터 청백 정신을 다시 배운다. 청백리란 단순하게 청렴결백한 것만이 아니라 예산을 절약하여 백성으로부터 세금을 덜 걷는 일을 하는 것이라는 점을.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나아가서 백성의 삶을 살찌게 하는 것이 청백의 길이다.

송흠은 1506년 중종반정(中宗反正) 뒤에는 홍문관 저작(著作)으로 부름을 받고 , 박사(博士), 수찬(修撰), 사간원 정언ㆍ헌납, 병조 정랑, 전라 도사, 사헌부 지평을 역임하였다. 모친의 나이가 많으므로 외직을 청하여 보성군수(寶城郡守), 옥천군수(沃川郡守), 순천부사(順天府使), 여산군수(礪山郡守)에 연달아 보임되었다. 또 조정에 들어와 사헌부 장령, 여러 시정(寺正), 의정부 사인이 되었다. (윤증이 지은 비문에 나온 기록임)

그러면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송흠의 여산군수 시절을 살펴보자.

중종 21권, 10년(1515 을해 / 명 정덕(正德) 10년) 2월 16일(갑진) 2번째 기사

예조 판서 김전 등을 청백리로 뽑아 향표리를 내리다

전교하였다.

“청백 탁이(淸白卓異)한, 예조 판서 김전·도승지 손중돈(孫仲暾)·좌부승지 조원기(趙元紀)·승문원 판교 강숙돌(姜叔突)에게는 각각 한 자급을 더하고, 충청도 절도사 김연수(金延壽)에게는 당표리(唐表裏 : 중국산 안팎 옷감.)를 하사하며, 담양 부사(潭陽府使) 박상(朴祥) · 여산 군수(礪山郡守) 송흠(宋欽)에게는 각각 향표리(鄕表裏 :국산 안팎 옷감.)를 하사하라.”
(후략)

중종 22권, 10년(1515 을해 / 명 정덕(正德) 10년) 6월 27일(임오) 4번째 기사

창원 부사 신공제 등을 개만을 따지지 말고 의망하도록 전교하다

전교하였다.

“창원 부사(昌原府使) 신공제(申公濟)· 여산 군수(礪山郡守) 송흠(宋欽) · 순창 군수(淳昌郡守) 김정(金淨)은 대간(臺諫)·시종(侍從)으로 쓰기에 인물과 기재(器才)가 합당하니, 개만(箇滿 : 임기만료)을 따지지 말고 결원이 생기는 대로 의망(擬望)하라.【이조 판서 안당(安瑭)이 아뢴 바에 인한 것이다.】


중종 23권, 10년(1515 을해 / 명 정덕(正德) 10년) 11월 29일(신해) 2번 째 기사

이계맹· 박열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이계맹(李繼孟)을 예조 판서(禮曹判書)로, 박열(朴說)을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으로, 방유령(方有寧)을 사간원 대사간(司諫院大司諫)으로, 송흠(宋欽) · 홍언필(洪彦弼)을 장령(掌令)으로, 최명창(崔命昌)을 홍문관 응교(弘文館應敎)로, 박수문(朴守紋)·김인손(金麟孫)을 지평(持平)으로, 이원간(李元幹)을 헌납(獻納)으로, 김영(金瑛)을 교리(校理)로, 허위(許渭)·김응벽(金應璧)을 정언(正言)으로 삼았다.

이 실록을 보면 송흠은 언제부터 여산군수를 하였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1515년 2월 16일에는 여산군수를 하였고 이후 1515년 11월 29일에 사헌부 장령으로 발령을 받은 것이다. 따라서 1515년에 호산춘이 만들어 졌으니 지금부터 596년 전이다.

그러면 <지지당 유고>에 나오는 호산춘 술 담그는 법을 살펴보자.

호산춘 방문 方文(제조법)은 한글과 한문으로 적혀 있다. 특히 술 담그는 법을 여인들도 알 수 있도록 언문으로 적어 놓은 것은 매우 의의가 깊다.

한말 술을 빚으려면 따로 쌀 닷 되를 다섯 번 빻고 백번 씻어서 물에 담가 하룻밤을 지나서 곱게 빻은 가루를 채에 쳐서 찬물 여섯 사발 반을 죽을 쑤어 식은 뒤에 미리 고운 누룩으로 곱게 빻은 가루 한 되를 6-7일 동안 햇볕에 쬐었다가 그것을 절반으로 나누어 밀가루 두 홉과 함께 쌀죽에 넣어서 술을 제조하는 데, 6-7일이 지나면 쌀을 한말을 전과 같이 빻고 씻어서 쪄 익으면 밥을 만들어 가지고 식기를 기다려서 찬물 열 두 사발과 누룩 가루로 이전에 나누어 두었던 5홉을 콩과 함께 밥에 골고루 섞어 빚어서 6-7일 후에 쓴다.

전라도 여산의 호산춘은 서울의 약산춘, 충청도의 노산춘과 함께 3대 민속 춘주(春酒)로 이름을 날렸다. 여기에서 춘 春자가 붙은 술은 2차 중양주로서 덧술을 두 번 세 번하여 증류주를 만든 청주를 말한다. 이외에도 민속주로는 평안도의 벽향주, 김천의 청명주 등이 유명하였다 한다.

농업 관련 백과사전인 <임원경제지>를 지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서유구(1764-1845)가 1827년에 지은 임원십육지(이효지등 역, 교문사, 2007년) 제7권에는 여러 종류의 전통주가 나오는 데 이중 주류 酎類로 호산춘등 5가지 술 (호산춘방, 잡곡주방, 두강춘방, 무릉도원주방, 동파주방)이 나온다. 여기의 첫 번째 주류로 소개되는 것은 호산춘방이다. 임원십육지에 나오는 호산춘방의 술 담그는 법을 살펴보자.




호산춘방

여산에서 나온 것으로 여산은 일명 호산이라고도 한다. 초하룻날 멥쌀 한 말 닷되를 여러 번 씻고 가루로 하여 냉수 7되를 섞고, 다시 끓는 물 1말 8되를 넣고 저으면 묽은 죽과 같이 되는 데 이것을 차게 식혀서 누룩가루 2되, 밀가루 2되를 넣고 항아리에 담는다.

13일후 다시 멥쌀 2말5되를 여러 번 씻어 가루로 하여 큰 그릇에 옮겨 뜨거운 물 2말5되를 넣어서 고루 섞어 식힌 후 누룩가루를 먼저 밑술에 넣고 잘 저어 준다.

두 번째 덧 술을 빚어 13일이 지난 다음 멥쌀 5말을 여러 번 씻어 고두밥을 짓거나 또는 가루로 하여 쪄서 끓는 물 5말을 넣고 잘 버무린 후 투명하고 윤기가 돌게 되면 자리에 펴 식힌 다음 누룩가루 2되 밀가루 1되를 넣고 두 번째 덧 술에 골고루 섞어 항아리에 담는다.
항아리를 차갑지도 덥지도 않는 곳에 두면 항아리를 돌려놓지 않아도 술맛이 변하지 않고 2-3개월 후면 마실 수 있다.

(산림경제보)


- <임원십육지> 책 P335에서 인용


4월 중순에 여산동헌을 답사하였다. 여산동헌은 전북 익산시 여산면 사무소 바로 옆에 있다. 동헌은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고, 동헌 앞에 있는 느티나무는 나이가 600년 정도 된단다. 송흠이 여산 군수를 하였을 때도 이 나무가 있었을 것 같다.

내친 김에 호산춘을 제조하는 술 공장이 있다 하여 익산시 왕궁면에 있는 <화곡주가>를 찾았다. 그곳에서 사장을 만나 천향호산춘에 대한 설명을 듣고 술 제조 과정을 구경하였다. 사장은 “춘 春자가 붙은 술은 대개 3번의 덧술을 하는데 호산춘 壺山春 역시 13일 간격으로 3번 술을 빚어 2~3개월 후 숙성시키는 100일주로 누룩의 양을 적게 넣어 누룩의 역한 냄새를 줄이고 장기간 숙성시켜 술맛이 깊고 향이 최고였던 조선시대 명주”라고 설명한다. 그곳에서 술을 몇 병 구입하여 시음을 하였다. 사장 말에 의하면 호산춘 술은 널리 안 알려져서 명절에나 주문 생산을 하는 정도라고 한다. 조금은 안타깝다. 청백리가 만든 명주 호산춘이니 이번 추석명절에는 이 술을 구입하여 아시는 분들에게 선물을 하련다. 청백리가 만든 술이니 정부나 공공 기관에서 선물용으로 활용하여도 좋을 텐데...
담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