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명소
조회수 : 2180
제목 장성의병, 출정에 앞서 도체찰사 정철에게 시무책을 건의하다.(4)
작성자 관리자
내용
제30회 장성의병, 출정에 앞서 도체찰사 정철에게 시무책을 건의하다.(4)

계속하여 시무책 10개조를 읽어보자.

여덟째, 각 관군들 군기(軍器)에 주(宙)자와 측(昃)자 총통과 목령 ․피령․철령 등 화살촉은 이제 모두 사용하지 않습니다. 가장 급한 것은 승자총통, 철환, 장편전 뿐입니다. 지금은 촌철도 금과 같아서 민력이 더욱 피곤한 때인 만큼 사용되지 않는 총통을 승자총통으로 바꿔 만들고 몇 가지 화살촉은 철환으로 바꾸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장성의병이 안 쓰는 군기는 없애고 그 대신 사용하는 무기로 대체하자는 건의를 한 것은 장성의병이 그만큼 군사에 관하여도 어둡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증거이다.

아홉째, 새로 개간한 땅은 개간년도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것이 정해진 법입니다. 금년에는 원장에 기록된 밭도 잘 가꾸지 못했는데 개간 전답을 어찌 가히 가꿀 수 있겠습니까. 아전들이 다만 작년에 기록한 개간지 장부를 보고 세금을 징수한 것은 지극히 잘못한 일이니, 개간지 세금을 일체 면제하여 백성들의 원망을 풀어주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탁상행정의 전형이다. 세수를 늘리고자 아전들이 일부러 이런 장난을 할 수도 있다.

열째, 삼가고 청렴․검소하며, 인자․명철․근면․온후․정직하여 나라 걱정하기를 집 걱정하듯 하고, 백성 사람하기를 자식 사랑하듯 하는 사람 둘을 찰폐관(察弊官)이라 이름하여, 여러 고을을 끊임없이 순찰하게 하거나 혹은 공식적인 행차나 암행을 하여 백성들의 괴로움을 살피게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체찰사가 민정을 제대로 살피도록 찰폐관을 임명하라는 건의이다.

위에서 진술한 몇 가지 일은 모두가 민심을 돌아오게 하고 식량을 넉넉하게 하는 데 절실한 근본이며, 인재를 얻어 백성들의 괴로움을 살피는 일은 근본의 근본이므로 인재등용으로 끝마치는 것입니다.

이상 열 가지 조목은 모두가 민폐의 대강 줄거리입니다. 만일 합하께서 변변치 못한 안이나마 채택하여 시행하신다면 이 보다 더 큰 것과 작은 것 까지도 하나하나 모두를 진달할 것입니다.

만약 왜적을 죽이는 일만 서두르고 백성들의 생활은 생각하지 않고 다만 식량만 풍족하게 하려고 노력한다면 이는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살을 베어 창자를 채울 것이고, 살이 다 없어지면 죽게 될 것이니 이것을 어찌 좋은 현상이라 하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합하께서는 이 점을 유념하소서.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민심을 얻는 일이다. 백성들의 신뢰를 받지 않으면 그 전쟁은 이길 수 없다.

문득 모택동이 장개석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이 생각난다. 그것은 국민을 대하는 태도에 있었다. 모택동 군대는 절대로 국민들을 수탈 안 하였다. 반면에 장개석 군대는 민폐를 끼쳤다. 왜적을 이기는 일을 서두르기에 앞서 먼저 백성들을 괴롭히지 않아야 한다는 장성의병청의 혜안은 정말 재평가를 받을 일이다.

아 아, 슬플 뿐입니다. 옛날 강회의 백성이 굶주리고 즉묵 고을에 병력이 쇠잔 하듯이 우리가 그러하다면 누구와 더불어 나라를 지킬 것입니까. 눈 몰아치고 험악한 천리 밖 변방에서 임금님의 옥체는 어떠하신지요. 아 아 무슨 말을 하오리까. 통곡하고 통곡할 뿐입니다. 지극히 답답하고 근심스러운 마음뿐입니다.

지금까지 시무책 10개조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장성 남문의병의 활동은 감동적이다. 왜적을 무찌르기에 앞서, 인심을 얻는 문제부터 조정에 건의를 하였으니. 각 지방에서 발생한 각종 폐단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대한 시정책을 도체찰사에게 제시하였으니.

그렇다면 도체찰사 정철은 이 건의문을 받고 어떤 조치를 하였을까? 장성의병청의 기대에 부응하여 전라도 백성들의 고통을 어느 정도 덜어 주었을까? 아쉽게도 이 시무책을 건의 받고 정철이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를 알 길이 없다. 시무책 건의에 대한 정철의 답신은 없다. 아울러 도체찰사 정철의 개혁안은 찾아 볼 수가 없다.

한편 1592년 11월에 정철은 동지중추부사 유경길로부터 탄핵을 받았다. 1592년 11월 25일자 선조실록을 읽어보자.

동지중추부사 유영길(柳永吉)이 아뢰기를, “호남 한 도(道)는 모름지기 급급히 경리(經理)해야 하는데 체찰사 정철(鄭澈)은 충청도의 기생이 있는 고을에서 날마다 술에 취해 기무(機務)를 잊고 있는데도 주세(主勢)가 고단하고 약하여 논계(論啓)한 사람이 없습니다.

아울러 정철은 또 한 가지 일로 선조의 노여움을 샀다. 전라 순찰사 권율(權慄)과의 일 때문이다. 전라 순찰사 권율이 왜군을 무찌르고자 전라도 군사를 이끌고 수원의 독성(禿城)으로 군사를 진출시키면서, 직산(稷山)에 이르자 체찰사 정철은 권율에게 경솔하게 진격하지 말도록 명령을 내렸다.

이에 권율은 직산에 군사를 머물게 하면서 조정에 보고하였다. 권율의 보고에는 “군사들이 호남을 지키라는 체찰사의 말을 기쁘게 생각하고 호남으로 도망간 자가 1천명이나 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에 조정에서는 정철의 처사에 대해 불쾌해 했고, 보고를 접한 선조도 크게 화를 냈다. 선조는 곧 바로 전지를 내려 정철을 책망하고 권율을 재촉하여 경성으로 진출하도록 명하였다. 또한 선조는 차고 있던 칼을 풀어 주며 말을 급히 달려 권율에게 주라고 하면서 ‘여러 장수들 중에 명을 따르지 않는 자가 있거든 이 칼로 처단하라.’고 하여 권율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선조수정실록 1592년 12월 1일 기사 참조)

이러하자 정철은 1593년 1월에 양호 체찰사에서 체직되어 사은사로 발령을 받는다. 정철은 2월에 선조가 계시는 의주로 돌아간다. 그는 5월에 명나라로 가서 11월에 귀국한다. 이후 그는 사직하여 강화도에서 힘든 날을 보내다가 1593년 12월에 별세한다.

여기에서 정리를 하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 하나 있다. 그것은 시무책을 누가 지었는가 하는 점이다. <국역 남문창의록․오산사지>의 ‘제현 사실(諸賢事實)’’에는 시무책을 지은 사람이 김경수, 김제민, 서연으로 각각 나와 있다.

제현사실 김경수 편에는 “체찰사 정송강에게 서연을 보내어 시기에 적합한 십조를 올렸으며”라고 적혀 있고, 김경수의 문집 <오천집>에도 시무책이 실려 있는데 시무책 서두에 “1592년 11월 18일 오산 남문창의도청 맹주 김경수는 도유사 서연을 보내서 삼가 목욕재개하고 두 번 절해서 도체찰사 정철 상국 합하에게 글을 올립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제현사실 김제민 편에는 “공은 십조를 서연에게 주어 체찰사 정철에게 올리고”라고 적혀 있고, 서연 편에도 “십조소를 지어 도체찰사 정철에게 올리고”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하니 누가 시무책 십조를 지었는지 헷갈린다. 아전인수식 기록들을 어떻게 해석하여야 할 지 어려움에 봉착한다. 다만 확실한 것은 도유사 서연이 시무책을 도체찰사 정철에게 전달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누가 시무책을 지었는가? 이에 대한 정답은 없는 듯하다. 그렇지만 필자의 생각은 이 시무책은 한 사람이 지은 것이라기보다는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10개 조의 시무책이 어느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보기에는 사례들이 너무 다양하다. 흥덕, 전주, 나주의 사례들은 실제로 겪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장성의병청은 사림들이 건의서를 만들면서 여러 차례 토론을 하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초안을 썼으리라. 필자는 그 초안을 맹주 김경수가 썼으리라 생각한다. 그것은 김경수가 전 예조좌랑이었고 격문 초안도 썼으며 의병청의 맹주이기 때문이다.

김제민은 당시에 의병장으로서 군사훈련에 매진하고 있었고 11월초에야 장성의병에 참여하였다. 도유사 서연은 건의서를 전달하기는 하였으나 그가 직접 썼다고 하기에는 의병청 내 위상이 그리 높지 않았다.

아무튼 장성의병청에 모인 사림들은 호남지방의 군정과 민중의 실상을 목격하고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민생 안정 없이는 국난 극복도 쉽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끼었다. 그리하여 시무책을 도체찰사 정철에게 건의한 것이다.

시무책 10개조. 이는 다시 평가를 하여야 할 중요한 사료이다.

< 참고문헌 >
o 조원래, 장성남문창의에서 본 임란의병의 한 형태, 국역 남문창의록․오산사지, P 509-536, 1997
o 김세곤, 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 2, 온새미로, 2013
o 김세곤, 송강문학기행 - 전남 담양, 열림기획, 2007
o 정철, 국역 송강집, 송강유적보존회, 1988
o 박영주, 송강평전, 고요아침, 2003
o 김경수 저․정원태 역, 국역오천집,
o 박기봉 편역, 충무공 이순신 전서 1, 비봉출핀사, 2006

김세곤(역사인물 기행작가, 호남역사연구원장)
담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