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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장성의병, 출정에 앞서 도체찰사 정철에게 시무책을 건의하다.(3)
작성자 관리자
내용
제29회 장성의병, 출정에 앞서 도체찰사 정철에게 시무책을 건의하다.(3)

건의서를 계속 읽어보자.

청하건대 한 조목 한 조목씩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바라건대, 합하께서는 저희들의 뜻을 방자하다 하지 마시고 살피시어 유념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첫째, 왜적 한 사람을 죽이면 급제한 사람과 동등한 처우를 한다는 조정의 안을 만들어 스님, 속인, 양인, 천민(僧․俗․良․賤)을 따지지 않고 어명을 받든 자가 왜적 한 명을 죽이면 출세하도록 하여 삼군에게 고무하고 격려함이 어떠하겠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보상을 받으면 그 일을 한다. 왜적을 죽이면 면천한다하는데 아니 싸울 노비가 있을까? 실제로 조정에서도 임진왜란 초기에 왜적을 벤 사노에 대하여 면천을 한 사례가 있었다. 1592년 7월 18일자 선조실록을 읽어보자.

비변사가 왜적을 벤 사노 순이·장량의 면천을 청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사노(私奴) 순이(順伊)·장량(蔣良) 등이 중국 파발아(擺撥兒)를 수행하여 순안(順安)의 수냉천(水冷川)에 도착하였을 때, 그중 하나는 왜인의 머리를 참(斬)하였고, 하나는 왜인의 말을 빼앗아 광녕(廣寧)으로 보내었습니다. 그러자 양 총병과 참장(參將)이 크게 칭찬하고 은(銀) 30냥과 비단 3필을 주었고, 도찰원(都察院)에서도 은냥(銀兩)을 지급하였습니다. 이는 예전에는 없던 일입니다. 순이와 장량을 모두 면천(免賤)시키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둘째, 전쟁에서 죽은 군졸은 그 가족이 관에서 빌려먹은 식량은 일체 징수하지 않을 것이고 잡역은 일체 시키지 않을 것이며, 그 부모처자를 잘 보호할 것이며, 장사가 죽으면 그 충성을 표창하여 백성들에게 본받게 할 것이며, 또 자손들의 이름을 기록하여 장차 조정에 추천하여 현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국가에서 보훈을 제대로 하여야 군인들이 몸을 아끼지 않고 싸운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셋째, 창칼을 메고 싸움터에 달려간 자는 오직 고통을 받고, 도주한 자는 처자를 보전하니 이름은 같은 군적에 있으나 그 공로는 하늘과 땅 차이가 있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합하께서는 급히 명령을 내리시어 도피하여 끝까지 전장에 나타나지 아니한 자는 목을 벨 것이며 그 처자를 구속하고 그 전답, 가옥 등을 환수하여 전사에게 상으로 주고 또 도피한 자를 체포한 자에게는 왜적을 체포한 것과 같은 상을 내린다고 하면 어떠하겠습니까.

전쟁터에서 죽은 이들을 많이 목격한 백성들은 관군에 동원되는 것을 기피하거나 아예 도망쳐서 산으로 피신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이런 현상을 그대로 두면 근본이 무너지고 만다. 도망가는 자를 그만두면 누가 전쟁하려 할 것인가? 건의문은 도망자에게는 연좌제와 가옥 전답 몰수까지도 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상 3조목은 실로 하나의 일이라고 할 것이고 비록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넉넉히 먹이는 것에 관한 급무는 아니지만, 우리 백성으로 하여금 싸우기를 즐거워하고 도망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게 하는 데는 일조 할 것이므로 이를 먼저 거론한 것입니다.

그러면 네 번째 건의사항을 읽어보자.

넷째, 이곳으로부터 타도에 운반되는 군량은 백 섬 미만인데 백성들은 천 여섬의 비용을 부담하는 셈입니다. 군인들은 한 끼니도 배부르게 먹지 못하면서 백성들 역시 이미 힘을 다하고 말았습니다. 어리석은 저희들의 생각으로는 공주관원들이 수원으로 군량미 천여섬을 운반하는데 충당하고, 여산관원이 공주를 충당하고, 나주관원이 여산을 충당하고, 해남관원이 나주를 충당하게 하도록 하면 어떠하겠습니까.

말하자면 해남 → 나주 → 여산 → 공주 → 수원 식으로 해당 읍의 관원이 인근 읍까지 군량운반을 책임지도록 하여 군량의 허실을 줄이자는 것이다.

다섯째, 순창에서 진상한 호피 일부의 값이 쌀 75섬인데, 이와 같이 각 읍에서 진상한 물건이 부지기수이어서 그 값이 얼마나 될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녹피, 메추라기, 기러기, 불린 쇠붙이 등 급하지 않은 것들이 축적되어 있고 그것을 값으로 치면 백만 냥 어치나 될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합하께서는 급히 계문을 올려 그 나머지를 찾아 3분의 2는 제하고, 혹은 군수품으로 사용하고 혹은 군량미 운송비로 사용하여 백성의 힘을 덜어주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혹자는 임금이 쓰는 물건을 신하된 자가 어찌 감히 줄일 것인가, 더구나 어명이 있어야 위의 몇 건에 대하여 면제하거나 중지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로 그러하지 아니합니다. 저 호피 한 장이 쌀 70여섬, 사슴 가죽 한 장이 무명 40여필이고, 기러기 한 마리가 베 열 필의 값어치, 석류 한 개가 세목 한 필, 생강 두 뿌리가 백미 열 말(斗)인 것을 조정에서 무슨 방법으로 알겠습니까.

이는 중요한 의미가 담긴 제안이다. 진상품만 줄여도 백성들의 고통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한 가정에 비유한다면, 도적은 담장 밖을 둘러싸 있고 노비들은 담장 안에서 굶주리고 있는데 방안에서 아버지를 위해 그 아들이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그 아버지를 포식하게 하는 것이 옳습니까. 아니면 그 성찬을 나누어 굶주린 노비들을 먹이어 그 도적을 방어하는 것이 옳습니까. 하물며 도적이 담장을 부수고 집안을 짓밟아 아버지가 마을 밖 한쪽에 나가있는 상황에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비유가 매우 적절하다. 적을 막으려면 내부 결속부터 하여야 한다. 내부에서 불평이 생기면 외부의 적을 이길 수 없다.

여섯째, 각 관원이 관청에 납입된 물건은 수령이 단독으로 사용하는 것만이 아니고 또한 상부 관원을 접대합니다.

그러나 이때 상부 관원과 수령의 음식을 평상시에 비유하여 당연히 10에서 7,8을 줄여서 굶주려 일을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지 않게만 함이 옳을 것입니다. 전주에서 꿀을 일 년에 상납하는 것이 모두 칠십 섬이고, 나주는 사십 섬이며, 참기름도 이와 같은데, 금년에는 꿀이 귀하여 꿀 한 되 값이 백미가 세말이나 되니, 도내에 꿀이 몇 백 섬인지 ,그 값이 쌀 몇 만 섬이 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합하께서는 급히 명령을 내려 그 나머지를 곡진하게 살피시고 10분의 8을 감하여 이를 군수물자에 사용하기도 하고 군량미 값으로 사용하여 백성들의 노력을 덜어주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이 또한 중요한 제안이다. 지도층이 솔선수범하여 씀씀이를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먼저 지도층이 수범을 보여야 백성들이 따라온다.

일곱째, 흥덕의 공물(貢物)이 일년에 9동(1동은 무명 열 필)임은 옛날부터 정해진 수인데, 어느 해에 그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또 9동를 더하여 봄․가을로 두 번 징수하는 것을 관례로 삼았습니다. 이와 같은 옳지 못한 법을 제정한 죄를 당장 물을 수는 없으니, 우선 두 배를 더하여 징수하는 제도를 중지하여 백성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흥덕현의 사례를 이렇게 구체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그 만큼 장성의병청에서 지방행정의 문제점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세곤(역사인물 기행작가, 호남역사연구원장)
담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