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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왜군에 달라붙은 부역자들
작성자 김세곤
내용

제8회 왜군에 달라붙은 부역자들

1597년 9월에 왜군들은 전라도 전 지역을 점령하였다. 조경남은 <난중잡록>에서 전라도에 50개 부대가 바둑판처럼 깔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본 사가(佐賀)의 번주(藩主)인 나베시마를 수행한 종군 승려 고레다쿠가 작성한 문건에 의하면 정읍 이남의 34개 고을은 13개 이상 왜군 장수들이 나누어서 점령하고 있었다. 이에 의하면 장성․담양은 우희다수가, 무장․영광․진원․창평은 중국중(中國衆 주고쿠 지방 군소장수), 화순․능주․김제․금구는 나베시마, 강진․해남은 시마즈, 순천․광양․구례․곡성․옥과는 고니시가 주둔하였다. (김덕진 저, 소쇄원 사람들 p 276~277참조)

이들은 각 고을에 머물면서 당근과 채찍 작전을 수행하였다. 즉 백성들을 달래고 쌀을 주면서 자기편으로 만들었고 저항하는 이들은 가차 없이 죽였다. 백성들 중에는 왜적에게 부역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왜적의 앞잡이가 되어 지방 유지들을 죽이고 재산을 빼앗는 등 못 된 짓을 하였다.

9월 15일 이후 며칠간의 <난중 잡록>을 읽으면 부역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

1597년 9월 15일
나베시마 등은 청주로부터 공주로 도로 나와 청정의 군대 수만 명과 같이 호서의 우도를 분탕질하고, 이어서 전라우도로 내려가면서 모두 분탕질하고, 여러 고을에 나누어 주둔하여 민패(民牌)를 내주며 백성을 달래고 쌀을 주니 곤궁한 인민이 다투어 들어갔다.

○ 시마즈 등의 적은 순창(淳昌)ㆍ담양(潭陽)으로부터 사방으로 흩어져 주둔하고 지켰다. 창평(昌平)ㆍ광주(光州)ㆍ옥과(玉果)ㆍ동복(同福)ㆍ능주(綾州)ㆍ화순(和順) 같은 데는 적병이 많고, 죽이고 노략질하는 것을 엄금하며 민패를 발급하여 불러다 항복시키니, 달려가 붙는 자가 날로 많아져서 시장을 열어 교역도 하였고, 도로가 있는 각 읍의 왜적도 모두 이같이 하였다.

동복(同福)의 생원(生員) 김우추(金遇秋)가 본현의 왜장에게 편지를 올려 이르기를, “누구나 부리면 백성이요 누구나 섬기면 임금이니, 한 호(戶)로 편입되어 성인의 백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고, 끝에다 시를 지어 붙이기를

칼을 잡고 동해를 건너오니 / 杖劍渡東海
장군은 왕의 보필감이요 / 將軍王佐才
사람 죽이기를 즐기지 않는다면 / 殺人如不嗜
천하가 모두 돌아올 것이요 / 四海盡歸來 하였다.

그 뒤 난리가 평정되자 사람들이 왜적에게 빌붙었다는 것으로 죄주었다. 이때에 “창전(昌全)ㆍ옥삼(玉三)ㆍ동이(同二)ㆍ곡일(谷一).”이란 말이 있었는데, 전(全)이란 것은 창평 한 고을 사람이 전부 빌붙었다는 의미이고, 3ㆍ2ㆍ1이라 함은 그 괴수가 옥과에는 셋, 동복에는 둘, 곡성에는 하나라는 말이다.

9월 17일
적장 평조신(平調信)이 만여 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임실로부터 남원에 이르렀다가, 다음날 구례로 향하여 그대로 본현에 유둔하고, 산에 들어간 사람을 유인해 내다가 민패를 주고 쌀도 주었다. 도로에다 난동을 금지하는 군대를 두어 왕래하는 왜적으로 하여금 수색하고 노략하지 못하게 하니, 궁한 백성이 우선 당장에 편안함을 다행으로 여겨 투항하는 사람이 매우 많았다. 이때에 적병이 상도(上道)로부터 혹은 백여 명, 혹은 5ㆍ60명, 혹은 천여 명, 만여 명에 이르는 집단이 연속하여 내려왔다.

○ 적장 요시라(要時羅)는 만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우도(右道)로부터 곡성(谷城)으로 와 주둔하여 민패를 주며 백성을 달래니, 투항해 들어가는 자가 여간 많지 않았다. 그리고 민간에 가서 약탈하는 것을 엄하게 금지하니 본현과 남원 남서면의 무지한 어리석은 백성들이 앞을 다투어 들어가 민패를 받았다.

남원 출신 하원서의 딸이 곡성의 왜적에게 포로가 되었는데, 하원서는 민패를 차고 적진으로 들어가 그 딸을 보고, 요시라에게 원통함을 호소하였다. 요시라는 주관하는 왜장을 불러 물어 보니, 하씨의 딸은 금법을 내리기 하루 전에 붙들려 왔다고 하여, 하원서는 찾아서 데리고 올 수가 없었다.

또한 시마즈의 군대들은 9월 27일에 해남을 점령하고 방문(榜文)을 걸고 당근과 채찍 전략으로 백성들을 다루었다. 즉 농민들은 평상시와 같이 농사에 힘쓸 것을 장려함과 동시에 왜군에 저항한 선비들을 밀고하도록 포고(布告)하였다.(기타지마 만지 책 p 208 참조)

한편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도 왜적 앞잡이 노릇을 한 백성들과 부역자들을 처벌한 기록이 군데군데 나타난다. 이들 기록을 살펴보자.

1597년 10월 13일
해남으로 들어와 웅크리고 있던 적들이 10월 10일에 우리 수군이 내려오는 것을 보고, 그 다음날 모두 도망하였는데, 해남 향리 송언봉과 신용 등이 적진 속으로 들어가서 왜놈을 꾀어 그 지방의 사족들을 많이 죽였다고 한다. 분하기가 짝이 없다.

10월 16일
밤 10시쯤 순천부사, 우후 이정충, 금갑 만호, 제포 만호 등이 해남으로부터 돌아왔다. 왜적 13명의 머리를 베고, 또 적진에 들어가 항복했던 송언봉 등을 데리고 왔다.

10월 19일
윤건 등 형제가 왜적에게 붙었던 자 둘을 붙잡아 왔다.

10월 20일
늦게 김종려, 정수, 백진남 등이 보러와서 윤지눌이 못된 짓을 하였다고 하였다.
(백진남은 삼당시인 옥봉 백광훈의 아들로서 해남의 선비였다. - 필자 주)

10월 22일
해남현감이 왜적에게 붙었던 윤해, 김언경을 꽁꽁 묶어서 올려보냈다. 이들은 나장들이 거처하는 곳에다가 단단히 가두라고 하였다.

10월 23일
낮에 윤해, 김언경을 처형하였다.

10월 30일
늦게 적에게 붙었던 해남의 정은부와 김신웅의 처등과 왜놈의 종들에게 지시하여 우리 백성을 죽인 두 명과 양반집 처녀를 욕보인 김애남을 모두 목 베어 효시하였다.

한편 전라우수사 이시언을 치계에는 왜군 앞잡이인 향리 사노 등의 실상이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다.

전라 우수사 이시언(李時言)이 치계하기를, “해남·강진·장흥·보성·무안 등의 고을은 인민이 거의 다 적에게 붙어 사족(士族)의 피난처를 일일이 가르쳐 주어 거의 다 살육되었습니다.

해남의 노직 향리(老職鄕吏) 송원봉과 가속 서리(假屬書吏) 김신웅 등은 혹은 좌수(座首)라느니 혹은 별감(別監)이라느니 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을 제멋대로 살륙하였으며, 육방(六房)을 차정(差定)하는 데 있어서도 사노(寺奴) 심운기는 이방(吏房), 향리 송사황은 호방(戶房), 사노 서명학은 예방(禮房), 사노 박인기는 병방(兵房), 향리 차덕남은 형방(刑房), 사노 박희원은 창색(倉色), 사노 다물사리(多勿沙里)·줏돌이(注叱石乙伊) 등은 도장(都將), 사노 윤해는 각처의 정탐, 사노 언경은 응자 착납(應子捉納)으로 각각 차정하여, 왜노가 하고자 하는 일이라면 모든 성의와 힘을 다하여 왜노에게 아양을 떨었으며, 또 왜진(倭陣)이 철수하여 돌아갈 적에 뒤떨어진 적에게 머물기를 정하여 세 곳에 주둔시켜 놓고서, 그를 빙자하여 온갖 흉악한 짓을 다 하였다고 합니다.

때문에 장수를 차정하여 적을 섬멸할 적에 송원봉과 사노 인세·윤해와 사노 언경은 잡아다가 자백을 받아 부대시참(不待時斬)으로 행형(行刑)하여 효시해 연해의 백성들에게 국법이 있음을 알도록 하고, 그 나머지의 미처 사로잡지 못한 사람은 지금 뒤쫓아 잡는 중입니다.”하였는데, 비변사에 계하하였다.(1597년 11월 12일자 선조실록)

주 1) 이시언의 장계에 나오는 송원봉(송언봉이라고도 함)과 김신웅, 윤해, 김언경(김언경으로 부름) 이름은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도 기록되어 있다.

주 2) 왜군에 달라붙은 부역자들은 전라도만의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왜군이 주둔하고 있는 곳에는 부역자가 있기 마련이었다.

임진왜란 초기 1592년에 국경인은 근왕병 모집 차 함경도에 머무르고 있던 선조의 두 왕자 임해군과 순화군 및 그들을 호종하였던 대신 김귀영과 황정욱·황혁 부자 등을 잡아 왜군 장수 가토에게 넘겼다.

정유재란의 경우도 경상도나 다른 도에도 부역자가 상당수 있었을 것이나 자료를 입수할 수 없었다.

반면에 왜군에게 부역한 자들과 달리 왜군 중에도 조선에 달라붙은 자도 있었다. 이른바 항왜인(降倭人)들이다. 그 중 대표적 인물이 사가야 김충선이다. 그는 김해김씨 성씨를 받아 귀화하였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우록서원에는 김충선의 위패가 모시어져 있다.

9월 16일 명량해전 때 이순신 배에 탄 왜인 준사도 항왜인이었다.

참고문헌
o 김덕진 지음, 소쇄원 사람들, 다알미디어, 2007
o 기타지마 만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침략,
경인문화사, 2008
o 무등역사연구회, 전라도 역사 이야기, 선인, 2013
o 이순신 지음, 송찬섭 엮어 옮김, 난중일기, 서해문집, 2004
o 강응천 외 7인 지음, 16세기, 민음사, 2014

김세곤(호남역사연구원장)
 

담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