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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면

마을유래

분향리(芬香里)
분향리는 본래 남일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죽분리와 궁산리, 병계리, 내동면의 영동, 시목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분향리라 해서 남면에 편입되었다. 기존마을인 궁산리와 병계리ㆍ영동은 없어지고 새로 분향에서 매향ㆍ시목에서 마흥ㆍ죽분에서 중앙이 각각 분리하였다. 현 행정이동으로 분향 1리는 분향ㆍ매향, 분향 2리는 죽분, 분향 3리는 시목ㆍ마흥 분향4리는 중앙으로 하고 있다.
녹진리(鹿津里)
녹진리는 본래 남이면의 지역으로 녹진동(ㆍ眞洞)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마산리 도림리와내동면의 영동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녹진리라 해서 남면에 편입되었다. 기존마을인 도림리는 녹진 서북쪽에있었는데 없어지고, 신흥마을은 본래 마산이었는데 1958년 분리되면서 신흥이라 하였다. 현 행정이동으로 녹진 1리는 마산ㆍ신흥, 녹진 2리는 녹진으로 하고 있다.
덕성리(德星里)
본래 남이면의 지역으로 둔덕에 있으므로 덕성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회룡리, 신안리, 영산리, 자은리, 풍산리 지역을 병합하여 덕성리라 해서 남면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1789년 간행된《호구총수》에는 덕성 리, 자은곡리, 회룡동이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신안리와 영산리는 새로 생기고 풍산리는 자은곡리에서 분리되었 다. 영산리는 일제 말에 연산리로 바뀌고, 자은과 풍산은 합하여 자풍이라 한다. 현 행정이동은 덕성1리는 회룡ㆍ신안이고, 덕성 2리는 자은ㆍ풍산, 덕성 3리는 덕성ㆍ연산이다.
마령리(馬嶺里)
본래 남이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서촌리ㆍ내마리ㆍ외마리ㆍ선창리ㆍ선평리ㆍ백운리ㆍ반계리ㆍ시정리 지역을 병합하여 마령리라 해서 남면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1789년 간행한《호구총수》에는 흑암리, 고마산리, 내마량리, 외마량리가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1914년 이전에 흑암리(검바우 또는 봉하촌)는 시정 앞 잔등넘어 있었던 마을로 없어 졌고, 고마산리도 선창 앞 안산에 있었던 마을로 없어졌다. 내마량리는 내마리가 되고, 외마량리는 외마리가 되었다. 그리고 서촌리ㆍ선창리ㆍ선평리ㆍ백운리ㆍ반계리ㆍ시정리가 새로 생겼다. 그중 반계리는 1960년경에 없어졌다. 현 행정이동은 마령 1리는 서촌ㆍ내마이고, 마령 2리는 선창ㆍ선평ㆍ외마, 마령 3리는 백운ㆍ시정이다.
평산리(平山里)
본래 남이면의 지역으로써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옹점리, 신평리, 장산리, 평산리를 병합하여 평산리라 해서 남면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1789년 간행한《호구총수》에는 평산촌(平山村), 신동리(新洞里), 입자점(笠子店)이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입자점은 옹점리, 신동리는 신평리로 이름이 바뀌었고, 장산리가 새로 생겼다. 1990년대에 옹점리는 장평리로 이름을 변경하였다.1910년 면제 실시에 따라 면소재지로 1914년에 분향리로 옮겨갈 때까지남이면과 남면의 소재지가 지금의 장평마을에 있었다. 현 행정이동은 평산 1리는 장평이고, 평산 2리는 장산, 평산, 신평이다.
행정리(杏亭里)
본래 남이면의 지역으로써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검정리, 행정리, 승가리, 송정리를 병합하여 행정리라 해서 남면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1789년 간행한《호구총수》에는 검정리(檢亭里)만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행정리와승가리ㆍ송정리가 새로 생겨난 마을이다. 그러나 송정리는 일제말기에 없어졌다. 현 행정이동은 행정 1리는 행정, 승가이고, 행정 2리는 검정이다.
월정리(月汀里)
본래 남일면의 지역으로써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월정리, 월계리, 월산리, 우치리, 신아산리를 병합하여 월 정리라 해서 남면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1789년 간행한《호구총수》에는 안청리, 비아리만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월정(불정)리와 우치리ㆍ궁산(월산)리ㆍ만동리ㆍ월계(구례)리가 새로 생겨난 마을이다. 그러나《호구총수》의 비 아리는 비아면으로 안청리는 하남면으로 편입되었다. 비아리의 일부가 신아산리로 새로 생겼다. 현 행정이동은 월정 1리는 불정, 새터이고, 월정 2리는 월계, 우치, 신아산이며, 월정 3리는 월산이다.
삼태리(三台里)
본래 남일면의 지역으로써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동태리, 서태리, 중태리, 지촌리를 병합하여 삼태리라 해서 남면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1789년 간행한《호구총수》에는 동태리, 중태리 서태리만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지촌리는 새로 생겨난 마을이다. 1983년에 지촌마을은 광주시 오룡동에 편입되었다. 현 행정이동은 삼태 1리는 서태이고, 삼태 2리는 중태이며, 삼태 3리는 동태이다.
월곡리(月谷里)
본래 남일면의 지역으로써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월곡리, 신촌리, 덕촌리, 금리와 평촌리 일부를 병합하여 월곡리라 해서 남면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1789년 간행한 «호구총수»에는 신촌리, 득양산리만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월곡리와 금리는 1900년대에 새로 생겨난 마을이다. 그리고 안평마을은 1980년대에 덕촌에서 분리되었다가 2000년대에 다시 합병되었다. 현 행정이동은 월곡 1리는 월곡, 금리이고, 월곡 2리는 덕촌, 안평이며, 월곡 3리는 신촌, 금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