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명소

도지정유산

Do designated heritage property

국가유산명 고산서원
소재지 전라남도 장성군 진원면 고산로 68
규 모 대지 724평, 건물 9동
분 류 기념물

상세정보

봉안인물 : 제9위

》주벽 : 노사 기정진

》종향 : 8위

(월고 조성가, 신호 김록휴, 노백헌 정재규, 석전 이최선, 동오 조의곤, 송사 기우만, 대곡 김석구, 인신 정의림)

》유물 : 문집 및 목판 980매, 8도 지도, 갓, 지팡이, 안경 등


이 서원은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1798∼1879) 선생이 조선(朝鮮) 고종(高宗) 15년(1878)에 정사(精舍)를 지어 담대헌(澹對軒)이라 이름하고 학문을 강론하던 곳인데 후손들이 1924년에 중건하여 1927년에 고산서원(高山書院)이라고 편액을 건 곳이다. 기정진 선생은 조선(朝鮮) 말기(末期) 성리학의 6대가(六大家)로 시호는 문정공(文靖公)으로, 사당에 주향(主享)되었으며, 이최선(李最善), 기우만(奇宇萬), 조의곤(曺毅坤), 김록휴(金錄休), 조성가(趙性家), 정재규(鄭載圭) 선생 등 5위의 신위(神位)가 배향(配享)되어 있다. 현재 경내에는 외삼문(外三門), 강당(講堂), 동재(東齋)인 거경재(居敬齋), 서재(西齋)인 집의재(集義齋)가 강학공간(講學空間)을 이루고, 내삼문(內三門), 사당(祠堂)인 고산사(高山祠)가 제향공간(祭享空間)을 이루고 있고, 선생의 문집(文集)·목판(木板) 등 이 장판각(藏板閣)에 보관되어 있다.

 

노사 기정진 선생

정조 22년 전북 순창군 복흥면 대방동에서 태어나 18세 때 선대의 고향인 장성으로 이주해 왔으며, 사마시에 장원한 후 40여 차례 벼슬을 주었으나 사양하고 6일간 봉직한 후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만 몰두하였다.

 

장안만목불여장성일목 (長安萬目 不如長城一目)

어느 해 청나라 사신이 우리나라에 와서 용단호장(龍短虎長) 이라는 글귀를 내놓고, 이에 대구(對句)를 맞추라 하였다. 이 글귀는 용은 짧고 호랑이는 길다라는 뜻으로 이치에 맞지 않는 내용이기 때문에 조정 대신들은 해답을 얻지 못하고 쩔쩔매다가 결국 장성의 노사선생에게 문의하였다. 선생은 "해(日)를 지칭하는 것으로서 해가 辰(용)방향에서 뜨는 겨울에는 짧고, 寅(호랑이)방향에서 뜨는 여름에는 길다는 뜻"이라고 하면서, 즉시 대구를 화원서방(畵圓書方)(그림으로 그리면 둥글고 글로 쓰면 네모난다)이라고 맞추니, 중국사신과 조정대신들이 크게 감탄하면서 「長案萬目 不如長城一目」이라는 말로써 노사선생을 찬양했다고 한다.


노사선생 문집

고종 19년(1882년)에 초간된 이후 몇 차례 간행되었는데 1983년 노사문집 16책 28권과 답 문류편 6책 15권 연보추록, 행장, 신도비문 등을 합쳐 양장본으로 발행되었음

 

장판각

노사선생의 문집목판, 선생이 사용하던 서적, 생활용품 등이 보관되어 있는데 1984년 11월에 착공하여 이듬해 6월에 완공


노사선생유물

사용하시던 생활용품과 직접 제작하신 8도 지도, 갓, 지팡이, 장도, 안경, 의신구가 장판 각에 보관

 

담대헌

서원의 강당으로 1878년에 노사선생이 토담으로 건립하여 제자들을 강학하던 곳으로 무등산에 있는 아버지 산소를 바라볼 수 있어 매우 기뻐하여 담대헌이라 불렀음.

찾아오시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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