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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경 필암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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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메뉴 정의
필암서원
필암서원
필암서원은 선조 23년(1590)에 하서 김인후(1510∼1560)를 추모하기 위해서 장성읍 기산리에 세워졌다. 1597년 정유재란으로 불타 없어졌으나 인조 2년(1624)에 다시 지었다. 효종 10년(1659) 필암서원'이라고 쓴 현판을 직접 내려보내 주셨으며, 1672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공부하는 곳을 앞쪽에, 제사지내는 곳을 뒤쪽에 배치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로서 휴식처가 되는 확연루를 시작으로 수업을 받는 청절당, 그 뒤에 학생들이 생활하는 공간인 동재와 서재가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그 북쪽으로는 문과 담으로 별도의 공간을 만들어 사당을 두고 제사를 지냈다. 청절당의 처마밑에는 윤봉구가 쓴 '필암서원'현판이 걸려있고, 대청마루에는 동춘당 송준길이 쓴 현판이 달려있다. 또한 확연루의 현판은 우암 송시열이 쓴 것이다. 사당의 동쪽에는 경장각이 있는데, 보물로 지정된 서책이나 문서 등이 보관되어 있다. 이들 자료는 주로 18세기∼20세기초부터 전래된 것으로서, 당시 지방교육과 제도 및 사회·경제상, 그리고 학자들의 생활상 등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필암서원 필암서원 필암서원 필암서원

연 혁

  • 선조 23년(1590) : 기효간, 변성온, 변이중 등 호남 유생의 발의로 장성읍 기산리에 창건
  • 선조 30년(1597) : 정유재란때 병화로 소진
  • 인조 24년(1624) : 황룡면 증산동에 복설
  • 효종 10년(1659) : 사액(賜額)
  • 현종 3년(1662) : 선액(宣額)
  • 현종 13년(1672) : 수해로 인해 현 필암리로 이건(移建)
  • 정조 10년(1786) : 고암 양자징 추배

중요 시설물

우동사(祐東祠)
필암서원의 사우로, 북쪽에 하서 김인후 선생, 동쪽에 고암 양자징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편액은 주자(朱字)의 글씨를 집자(集字)하였다. 4칸 반9평
청절당(淸節堂)
중앙은 강당 좌우에 협실 옛 진원현의 객사 건물을 옮겼다고 한다. 우암 송시열이 쓴 신도비문 중 청풍대절이라는 글을 인용하였으며 편백은 동춘랑 송준길의 글씨다. 강당/5칸 85㎡
경장각(敬藏閣)
인종이 하사하신 묵죽도(墨竹圖)의 판각을 보관하고 있다. 편액은 정조대왕의 어필이며 망이쳐져 있다. 3칸4평.
확연루
필암서원 입구의 문루(門樓)로 서원을 넘나드는 사람들에게 진리추구의 엄정함으로 압도할뿐만아니라 네 귀퉁이에 조각된 귀공포(龜拱包)는 엄숙하면서도 고졸(古拙)한 맛을 풍긴다. 편액은 우암 송시열(尤庵 宋詩烈)의 글씨다. 2층 18칸 13평
필암서원

찾아오시는 길

  • 주소 : 장성군 황룡면 필암서원로 184
  • 관리기관 : 필암서원 전시관 061)393-7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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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
  • 행정복지국 문화관광과 관광진흥담당 김평호 ☎ 061-390-7242
갱신일자
2018. 11. 29